최태웅 감독 ‘스피드 배구’ 가장 높이 날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26일 03시 00분


현대캐피탈 7년만에 정규리그 1위
단일시즌 최다 16연승 신기록 행진… 崔감독 데뷔 첫해-역대 최연소 우승

스피드 배구는 결실도 빨랐다. 올 시즌을 앞두고 ‘업 템포 1.0’을 표방하며 빠른 배구를 내세운 현대캐피탈이 스피드 배구 도입 한 시즌 만에 프로배구 남자부 정상에 올랐다. 현대캐피탈이 정규리그에서 우승한 건 2008∼2009시즌 이후 7시즌 만이다.

현대캐피탈은 25일 경기 안산 상록수체육관에서 열린 2015∼2016 NH농협 V리그 방문경기에서 디펜딩 챔피언 OK저축은행에 3-0(25-20, 25-16, 25-22) 완승을 거뒀다. 이날 승리로 역대 단일 시즌 최다 연승 기록을 16으로 늘린 현대캐피탈(승점 75)은 2위 OK저축은행에 승점 7점 차로 앞서며 남은 경기 결과에 관계없이 우승을 확정했다.

이번 시즌 처음으로 사령탑에 오른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40)은 남녀부를 통틀어 역대 최연소 정규리그 우승 감독이 됐다. 프로배구에서 감독 데뷔 첫해 정규리그 1위를 차지한 것도, 감독과 선수로 모두 정상에 오른 것도 최 감독이 처음이다.

지난 시즌 현역에서 은퇴하자마자 곧바로 지휘봉을 잡은 최 감독은 스피드 배구라는 키워드를 들고나왔다. 삼성화재 주전 세터로 활약할 때 스스로 집대성한 것이나 다름없는 외국인 선수 중심의 몰방(沒放) 배구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개념이었다.

문제는 현대캐피탈 선수들도 몰방 배구에 익숙해 있었다는 것. 전반기가 끝났을 때 현대캐피탈은 10승 8패(승점 31)로 4위였다. 구단에서는 “2, 3년은 지켜볼 테니 소신대로 하라”고 했지만 최 감독 스스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그때 ‘수학 문제집’이 최 감독에게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신현석 현대캐피탈 단장은 “최 감독이 건강이 걱정될 정보로 전력 분석에만 매달리더라. 그래서 ‘다른 취미를 좀 가져 보라’고 제안했더니 어느 날 중학교 수학 문제집을 들고 나타났다”며 웃었다.

최 감독은 “머리가 답답할 때 소인수분해나 집합 문제에 집중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가 좋았다. 수학 문제를 풀면서 ‘실수하지 않으면 오늘과 다른 미래는 찾아오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선수들에게 ‘마음껏 실수해도 좋다’고 얘기했던 게 결국 믿음과 신뢰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수학을 알지 못하는 자는 참된 지혜를 얻을 수 없다”고 했다. 최 감독도 수학을 통해 지혜를 얻은 걸까. 후반기 들어 최 감독은 ‘명언 제조기’로도 명성을 얻었다. 최 감독은 이날도 3세트에서 6-9로 뒤지자 작전 시간을 불러 “원하는 걸 쉽게 얻으려 하지 말라. 끝까지 할 건 해야 한다”는 말을 ‘어록’에 추가했다.

삼성화재 시절부터 호흡을 맞춘 여오현 플레잉코치(38)는 “솔직히 감독님 말씀에 손발이 오그라들 때도 있었다. 그래도 감독님 말씀이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는 기폭제가 된 건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주장 문성민(30) 역시 “감독님 말씀에 닭살이 돋기도 했는데 이상하게 코트에 들어갈 때 힘이 나더라”라며 웃었다.

현대캐피탈은 다음 달 18일부터 플레이오프 승자와 챔피언결정전을 치른다.

안산=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현대캐피탈#최태웅#스피드 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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