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2016 프로농구 4강 플레이오프(PO·5전 3선승제)에서 오리온에 패해 챔피언결정전 4연패 도전 기회를 놓친 모비스 유재학 감독(사진)을 보며 머릿속에서 계속 맴돈 말이다.
3연속 패배로 우승 도전이 좌절됐지만 유 감독은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이며 경기장을 떠났다. 승패를 떠나 유 감독은 이번 PO 내내 오리온의 전력을 구석구석 파헤쳐 가장 효과적이면서도 기발한 수들을 던졌다. PO를 준비하면서 스스로 신이 난 듯했다. 그중 하나가 애런 헤인즈를 집중 봉쇄할 것이라는 예상을 깬 작전이었다. 조 잭슨과 헤인즈의 수비 때문에 많아질 수밖에 없는 오리온 국내 선수들의 외곽 슛 기회를 줄이기 위해 헤인즈에 대한 수비를 오히려 느슨하게 한 것이었다. “헤인즈를 묶어도 25점, 놔줘도 35점이다. 그래서 헤인즈를 막기 위한 도움 수비나 지역 방어는 안 쓸 것”이라는 유 감독의 역수는 효과를 봤다.
유 감독은 PO를 준비하면서 모비스 전력의 한계가 무엇인지도 구체적으로 파악했다. 모비스는 정규리그 내내 선수들의 체력 저하가 우려됐지만 유 감독은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고, PO를 준비하면서 더 확실해졌다. 양동근과 아이라 클라크 말고 우리 선수들은 젊다”고 잘라 말했다. 그 대신 “선수들을 반반씩 나눠 자체 경기를 하면 전혀 손발이 맞지 않는다. 양동근 함지훈과 같이 뛸 때만 모비스”라며 어려운 선수 구성 사정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한 원로 농구인은 “비록 졌지만 유 감독은 세 시즌 연속 우승 과정에서 묻혔던 팀의 한계나 미진한 부분을 파악하면서 자연스럽게 선수들과 공유하는 기회를 얻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대 추일승 감독도 “유 감독에게 배운 게 많다”며 유 감독의 안목에 높은 점수를 줬다.
이번 4강 PO를 앞두고 모비스가 최선을 다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농구계에 돌았다. 3연패를 하면서 우수 신인을 확보하지 못했던 모비스가 챔피언전 진출을 포기하는 대신 다음 시즌 신인 드래프트에 집중할 것이라는 추측성 소문이었다. 프로농구 신인 드래프트는 이전 시즌 1, 2위 팀을 제외하고 나머지 8개팀이 똑같은 확률(12.5%)을 받은 상황에서 추첨 순번을 정한다.
유 감독은 좋지 않은 소문을 불식하면서 다음 시즌 드래프트 시장에 나오는 이종현 강상재 최성모(이상 고려대) 최준용(연세대) 등 대학 농구 거물들을 영입할 기회까지 자연스럽게 얻었다.
PO 3차전에서 보여준 유 감독의 미소는 팀의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나비 효과를 암시하는 걸까. 유 감독이 기록한 통산(정규리그, 플레이오프 포함) 441패(587승) 중 마지막 3패가 꽤나 의미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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