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티모어의 김현수(사진)가 확실히 달라졌다. 21일 미국 플로리다 주 새러소타에서 열린 메이저리그 시범경기 탬파베이전에서 이틀을 쉬고 출전한 김현수는 가볍게 안타 2개를 뽑아냈다. 17일 피츠버그전에 이은 두 번째 멀티히트. 타구의 질이 확연히 좋아졌다. 타율은 처음으로 2할(40타수 8안타)로 올라섰다. 현지 신문인 볼티모어선은 ‘타격기계(김현수의 별명)의 엔진 소리가 계속 들린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김현수의 급상승세를 조명했다.
시범경기 시작과 함께 고개를 숙이며 23타수 무안타로 지옥 문턱까지 갔던 김현수. 그의 반전 스토리 뒤에는 ‘완벽주의자’ 벅 쇼월터 볼티모어 감독이 있다.
쇼월터 감독은 ‘보수적인 학교의 완고한 교장선생님’으로 불린다. 직설적인 사람들은 아예 ‘통제광(Control Freak)’이라고 칭한다. 만사를 자기 뜻대로 하려는 사람이라는 비아냥거림이다. 그는 선수가 양말을 반듯하게 신었는지도 확인하는 스타일이다.
그런 그가 ‘명장’으로 인정받는 건 야구에 대해 ‘완벽주의’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볼티모어 안방구장 캠던야즈의 감독실에는 캠핑용 매트리스가 하나 있다. 그는 고민거리가 생기면 집에 가지 않는다. 감독실에서 밤새도록 해법을 찾고, 동틀 무렵 매트리스에 누워 쪽잠을 잔다. 그의 경쟁력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쇼월터의 매뉴얼은 6200쪽의 탈무드(유대교 율법 등을 집대성한 책)보다 내용이 더 많다”는 말까지 있다.
한국에서 건너온 김현수의 적응 과정에도 쇼월터 감독의 완벽주의가 스며들었다. 그는 김현수에게 “우리가 너에게 모두 맞추겠다”고 말했고, 실제로 사소한 것 하나 놓치지 않았다. 스프링캠프 기자회견장에 태극기를 달도록 구단에 요청했고, 식당 주방장에게 비빔밥을 준비하게 했다. 부진이 거듭돼 여론이 좋지 않자 “이제 며칠 안 됐다”, “강정호도 처음엔 부진했다”며 김현수가 동요하지 않게 했다. 그래도 부진이 거듭되자 16일 밤늦게까지 김현수와 함께 KBO 리그 시절의 영상 자료를 분석했다. 통역 과정에서 문제가 생길까 염려해 볼티모어 마이너리그에서 연수 중인 최희섭(전 KIA)까지 불렀다. 최희섭은 “메이저리그는 선수가 많아서 부진하면 버리고 다른 선수를 부른다. 캠프에 7번 정도 참가했지만 이런 경우는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고 밝혔다.
심야 회동을 통해 김현수의 스윙이 이전보다 많이 커졌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래서 간결한 스윙이 정답이라고 의견을 모았다. 그런데 쇼월터 감독은 둘을 돌려보낸 뒤 홀로 감독실에서 다른 문제를 풀었다. 다음 날 “김현수를 장타자들과 함께 훈련시킨 게 문제였다. 그래서 김현수 스윙이 커졌다. 내가 조 편성을 잘못했다”고 말했다. 김현수가 부진에 빠진 근본 이유까지 지독하게 찾아내 재발되지 않도록 한 것이다.
김현수의 17일 첫 멀티히트는 그렇게 탄생했고, 나흘 만에 두 번째 멀티히트가 나왔다. 최근 7경기에서 0.471(17타수 8안타)의 타율로 상승세를 타고 있다. 3월 말에야 자신의 리듬을 찾은 강정호보다 열흘 정도 일찍 지옥에서 탈출했다.
최희섭은 “쇼월터 감독 덕분에 김현수가 살았다. 이제는 김현수가 야구를 잘해서 쇼월터 감독에게 보답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쇼월터 감독은 올해의 감독상을 3번이나 받은 명장이지만 아직 우승은 없다. 그래서 내심 올해 가을을 기대하고 있다. 김현수는 여러모로 올 시즌 볼티모어에 꼭 필요한 선수다. 김현수가 살아야 쇼월터가 사는 구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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