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건 기자의 인저리 타임]‘깃발 더비’ 새 지역 라이벌전 탄생?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23일 03시 00분


19일 수원종합운동장을 찾은 염태영 수원시장(왼쪽)과 이재명 성남시장. K리그 제공
19일 수원종합운동장을 찾은 염태영 수원시장(왼쪽)과 이재명 성남시장. K리그 제공
▷더비(Derby)는 같은 지역 팀들의 경기를 말한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는 런던 연고 팀만 5개여서 런던 더비의 경우 ‘북런던 더비’ ‘동런던 더비’로 세분돼 있다. 원래 ‘로컬 더비’로 시작했지만 이후 라이벌전을 뜻하는 용어로 확장됐다. K리그에도 다양한 더비가 있다. 클래식 최고의 흥행 카드인 수원과 FC서울의 ‘슈퍼매치’는 2009년 국제축구연맹(FIFA)이 세계 20대 더비로 선정했다. 포항과 울산의 ‘동해안 더비’, 전북과 전남의 ‘호남 더비’, 서울과 인천의 ‘경인 더비’ 등도 있다. 여기에 전남과 포항의 ‘제철가 더비’, 전북과 울산의 ‘현대가 더비’까지 등장하며 남발된다는 느낌도 있지만 팬들의 관심을 끄는 데는 분명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올해 개막을 앞두고는 ‘양강’으로 꼽히는 전북과 서울의 ‘전설 더비’와 함께 새로운 더비가 탄생했다. 수원FC와 성남FC의 ‘깃발 더비’다. 애초 이 매치는 관심을 끌 만한 경기가 아니었다. 수원FC가 같은 지역의 터줏대감 수원과 대결하는 본래 의미의 ‘수원 더비’는 수원FC가 지난해 승격에 성공하면서부터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옆 동네 성남과의 대결은 딱히 화제가 될 만한 게 없었다. 그러나 이재명 성남시장이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팬들이 이긴 팀의 구단 깃발을 진 팀 경기장에 걸기를 요구하는데 어떨까요?’라고 제안한 것을 염태영 수원시장이 ‘축구팬이 원하고 즐거워한다면 좋다’고 화답하면서 현실이 됐다.

▷농담처럼 시작한 내기였지만 효과는 대단했다. 19일 수원종합운동장에는 1만2825명의 만원 관중이 운집했다. 역대 수원FC 최다 관중이었다. 챌린지(2부)에서 뛰었던 지난해 수원FC의 평균 관중은 1432명에 불과했다. 방문 팀인 성남부터 적극적이었다. 지역 내 기업의 후원으로 대형버스 수십 대를 동원해 응원단을 꾸렸다. 구단주인 두 시장은 본부석에 앉아 경기를 끝까지 지켜봤다. 경기가 무승부로 끝나 다른 구단 깃발을 거는 일은 없었지만 7월 24일 성남에서 열리는 두 번째 대결에서도 ‘깃발 더비’의 열기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성남이 그랬던 것처럼 그때는 수원이 조직적인 방문 응원단을 꾸릴 것이다.

▷올해 클래식 12개 팀 가운데 시장이 구단주인 팀은 성남, 수원, 광주, 인천, 상주 등 5개다. 챌린지에는 더 많은 시민구단이 있다. 하지만 그동안 많은 시민구단의 시장·도지사가 구단주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팀이 강등되자 “프로는 결과만 중요하다. 감사를 통해 해체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한 도지사가 있었고 “기업구단에 비해 예산이 적어 어차피 성적을 낼 수 없다”며 방관한 시장도 있었다. 전임자가 창단했다는 이유로 홀대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이번 ‘깃발 더비’는 구단주부터 나서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면 시민구단도 화제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중요한 건 돈이 아니라 관심이다. 사족 하나.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두 시장의 당이 달랐어도 ‘깃발 더비’는 성사됐을까.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k리그#깃발 더비#수원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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