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주년’ 맞은 한국 배구의 민낯, 밥그릇 싸움에…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24일 15시 09분


오늘은 한국에 배구가 들어온 지 100년 되는 날이다. 프로배구를 담당하는 한국배구연맹(KOVO)과 대한배구협회(KVA) 모두 1916년 3월 25일 서울 YMCA 체육관에서 선교사 바이런 P 반하트 씨(1889~1942)가 배구를 처음 소개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분야를 막론하고 이런 날에는 보통 100주년 기념행사로 떠들썩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배구는 참 조용하다. 프로 쪽은 아예 경기 일정이 없다. 원래는 여자부 챔피언 결정전 최종전인 5차전이 열릴 예정이었지만 승부는 3차전에서 끝났다. 아마추어에서도 전국남녀 9인제배구종별선수권대회나 전국 대학배구리그처럼 일상적인 일정이 전부다. 대한배구협회 홈페이지에 “‘한국배구 100년사(史)’를 펴내려는 데 예산이 부족하니 기부금을 보내달라”는 안내문이 올라와 있을 뿐이다.

다른 종목은 어땠을까. 야구 도입 100주년으로 알고 있던 2005년(대한야구협회는 2013년 야구 도입 원년을 1904년으로 고쳤다)은 각종 야구 축제로 시끌벅적했다. 한국야구 100주년 기념식에서는 정동채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이 연설했고, ‘한국 야구의 메카’ 서울 동대문야구장에서는 한국야구 100주년 기념 고교야구대회가 열렸다. 프로야구 선수들도 100주년 기념 패치를 단 유니폼을 입고 뛰었다. 야구 100주년 기념우표도 나왔다. 축구는 종목 특성상 정확한 도입 연도를 알기 어렵고 농구는 30일이 100주년이다.

문제가 뭘까. 배구 기자들 사이에서 “배구계 가장 큰 문제는 관계자들이 배구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점”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성의가 부족하다는 얘기였다. 예를 들어 올 시즌 프로배구 여자부 챔피언 현대건설 선수들이 우승 기념사진을 찍을 때 쓴 모자는 지난해 쓰려고 만들었다가 재활용한 것이다. 모자에 연도 표시가 없는 이유다. 물론 그러면 안 된다는 법은 없지만 이런 걸로 책잡힌다는 것 자체가 평소 현대건설 프런트가 어떤 이미지였는지 보여준다.

물론 현대건설만 그러는 것도 아니고 여자부 팀만 그러는 것도 아니다. 프런트가 감독을 무시하는 발언을 일삼는 건 몇몇 팀에서는 놀랄 만한 일도 못 된다. 구단의 단장이 먼저 제안해 위로주를 마시고 온 감독을 두고 “팀은 맨날 지는데 감독이 술만 먹고 다닌다”고 비난하는 프런트 직원도 있었다.

프로만 그러는 것도 아니다. 대한배구협회는 틈만 나면 각종 명목으로 ‘돈 좀 주세요’하고 여기저기 손 벌리기 바쁘다. “그 돈이 사실은 협회 예산이 아니라 누구 주머니로 들어간다더라”하는 흉흉한 소문도 나돈다. 얼마 전 이미 심판자격을 딴 지 한참 된 이들에게 갑작스레 심판 등록비를 걷으려다 무산된 이유다. 그 사이 초중고 배구팀 몇 개가 사라진지 모른다.

100주년을 맞은 한국 배구의 민낯이 이렇다. 자기 밥그릇만 신경 쓸 뿐 역사에 대한 존중과 미래에 대한 계획 같은 건 찾아보기 힘들다. 앞으로 100년 뒤 후손들이 ‘그때 배구 인기가 그렇게 좋았는데 왜 아무 것도 하지 않으셨나요?’하고 물으면 뭐라고 답을 해야 할까. 아니, 누군가 한국 배구 200주년을 기억이나 할까.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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