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유턴은 실패자라고 생각한다.” 김현수(볼티모어·사진)는 이렇게 배수의 진을 치고 태평양을 건너갔지만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볼티모어가 계약을 파기하고 김현수를 한국에 돌려보낼 방안을 검토했다’는 현지 언론의 보도까지 나왔다. 이 기사를 쓴 폭스스포츠의 켄 로젠털은 미국 야구 기자 중 가장 꼼꼼하게 취재하는 기자로 인정받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보도 다음 날인 28일 볼티모어의 벅 쇼월터 감독이 상당 부분 시인했다. 그는 “‘김현수가 경쟁하고 있다’는 말은 솔직하지 못한 표현이다. 조만간 ‘힘든 결정’을 내려야 한다”라고 밝혔다. 시범경기 타율 0.182(44타수 8안타). ‘타격기계’가 시동도 걸지 못하고 반송될 위기에 몰린 것이다.
“강정호(피츠버그)를 보고 김현수를 영입했다”던 볼티모어. 그런데 왜 강정호만큼 기회를 주지 않고 벌써 ‘퇴출’ 운운하는 것일까. 댄 듀켓 볼티모어 단장이 최근까지도 “문화도 차이가 있고, 야구도 다르다”며 적응기간의 필요성을 강조했는데도 말이다. 김현수의 ‘마이너리그 거부권’이 오히려 부메랑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 조항 때문에 볼티모어는 선수 동의 없이 김현수를 마이너리그로 보낼 수 없다. 그렇다고 메이저리그에서 쓰자니 기량에 물음표가 너무 많다. 양자택일이 불가능할 경우 계약 파기를 검토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계약 파기를 결정하면 볼티모어는 약속된 700만 달러를 김현수에게 지급하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듀켓 단장은 “이 문제(계약 파기)는 우리 구단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다”는 의외의 말을 했다. 그는 “김현수의 의지도 중요하고, KBO의 관심도 필요하다”면서 다른 의도를 내비쳤다.
1년여 전 윤석민(KIA)과 같은 퇴출전략을 짜고 있는 것이다. 볼티모어는 마이너리그 거부권이 있던 윤석민에게 빅리그행 대신 계약 파기를 통보했다. 그리고 윤석민을 친정팀 KIA에 되돌려 보내면서 총 계약금 575만 달러 중 430만 달러를 아낄 수 있었다. “볼티모어가 벌써부터 퇴출설을 흘리는 건 국내 구단들에 김현수 영입을 준비하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전직 메이저리그 스카우트가 말한 이유다.
볼티모어가 손실금액에 연연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김현수는 스스로 결심할 때까지는 시간을 벌 수 있게 됐다. 메이저리그 해설가 송재우 씨는 “역설적으로 지금이야말로 김현수가 ‘마이너리그 거부권’에 매달려야 한다”고 말했다. 마이너리그에서 맥없이 퇴출을 기다릴 게 아니라, 거부권을 행사한 뒤 메이저리그에서 분위기 반등을 노려야 한다는 뜻이다.
‘쿠바산 계륵’으로 불렸던 알렉스 게레로(LA 다저스)가 지난해 그렇게 했다. 구단의 마이너리그행을 단호히 거부하고 빅리그에서 버티며 한 시즌을 성공적으로 보냈다. 김현수에게 부메랑이 돼 버린 마이너리그 거부권. 그렇지만 지금은 그 조항이 유일한 동아줄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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