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경험-美코치협 지침서 내용 담아… 원고는 다 썼는데 타이틀없어 망설여
우승한 날 술 먹어도 안 나오던 눈물… 날 보고 우는 아내 모습에 나도 주르륵
오리온 추일승 감독(사진)은 2015∼2016 KCC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6차전에서 KCC를 꺾고 우승을 확정한 뒤 “원 없이 울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담담한 표정으로 선수들의 등을 두드려주는 걸로 우승 세리머니를 대신했다. 경기 후 축하 회식 자리를 마친 뒤 새벽에 집에 도착해서야 추 감독은 엉엉 울었다. “집사람이 나를 보며 우니 그제야 눈물이 나왔다.”
프로 감독으로 처음 헹가래를 받은 추 감독은 이번 포스트시즌에 불편한 다리의 통증을 참아가며 벤치를 지켰다. 그는 “오른쪽 엄지발톱이 살을 찢고 들어가면서 통증이 말이 아니었는데 참고 승부에 집중했다”고 털어놓았다. 당장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태라는 게 추 감독의 얘기였다.
홍대부고 시절인 1979년 뒤늦게 농구를 시작한 추 감독은 코트 인생 37년 만에 비로소 자신의 진면목을 보여줬다는 기쁨이 크다. 특히 스타플레이어 1∼2명에게 의존하지 않고 선수 전원을 폭넓게 활용하는 ‘토털 농구’의 결실을 맺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뒀다.
추 감독의 프로 통산 전적은 308승 329패다. 승리보다 많은 패배에서 좋은 약을 얻었고, 이번 챔피언결정전에서도 지나간 패배를 되새기며 전략을 짰다. 추 감독은 “2007년 KTF(현 kt) 감독 시절 챔피언결정전에서 모비스에 패하며 다양한 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고, 나 스스로 적극적으로 변해야 되겠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그래서 앞으로도 패배를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마음이다. 추 감독은 “미국대학농구를 보면 토너먼트에서 떨어진 팀 감독만 따로 모아 인터뷰를 한다. 패한 감독들도 경기에서 활용한 전략을 모두 털어놓고 토론을 벌이는데 거기서 많은 해결책을 얻기도 한다. 참 부러운 문화”라고 말했다.
우승 못한 감독이라는 오랜 꼬리표를 떼 너무나 홀가분하다고도 했다. “우승이 없어 그동안 못했던 일이 있다”고 운을 뗀 추 감독은 이제 당당하게 책을 펴낼 것이라고 했다. 추 감독은 “원고는 다 썼는데 챔피언 타이틀이 없어 머뭇거렸다. 농구 코칭에 대한 책인데 내 경험도 들어가 있고, 미국코치협회 지침서들에서 좋은 내용도 발췌해 우리 실정에 맞게 설명해봤다”고 했다.
챔피언결정전 6차전이 끝난 뒤 영국의 성악가 폴 포츠가 부른 ‘빈체로’의 마지막 가사(I will win·승리할 것이다)를 언급하며 우승을 기원했다는 일화를 밝힌 추 감독. 사실 그가 즐겨 듣는 곡은 세계적인 팝페라 그룹 ‘일디보’의 노래다. “한 번 들어보라”고 권하는 추 감독의 표정이 어느 때보다 따사로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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