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와 한상훈의 色다른 ‘동병상련’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4일 19시 57분


“그래도 (김)현수가 부럽습니다.” 김현수가 소속팀 볼티모어로부터 갖은 핍박을 받기 시작하던 지난달 말. 그의 신일고 7년 선배인 한상훈도 전 소속팀 한화와 계약해지 등을 놓고 똑같이 대립하고 있었다. 동병상련이었다. 그래도 한상훈은 후배 김현수의 처지가 부럽다고 했다.

‘책임 회피’라는 측면에서 한국과 미국은 가끔 일치된 모습을 보인다. 최근 한상훈과 김현수의 갈등 양상이 상당히 닮았다. ▲구단은 선수와 다년 계약을 했다 ▲그런데 선수의 활약이 기대치에 못 미치자, 구단은 계약 해지를 원했다 ▲그러나 구단은 그 책임을 어떻게든 줄이려고 했다 ▲그런데 깔끔하지 못했다. 무리수를 동원하면서 갈등이 커졌다.

볼티모어는 2년 700만 달러에 김현수와 메이저리그 계약을 했다. 그런데 김현수가 시범경기에서 1할 대 타율로 크게 부진하자, 언론에 ‘계약 파기설’을 흘렸다. 시범경기 20여 일만에 나온 이례적인 방출설이었다. 그런데 온전히 책임지는 ‘방출’이 아니었다. 구단은 한국 구단에 되팔고자 했다. 한국에 되팔면 지급해야 할 돈의 액수가 줄고, 그만큼 스카우트 실패에 따른 책임의 크기도 감소하는 것이었다. ‘적응할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김현수에게 마이너리그행을 종용했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볼티모어가 국내 구단과 협상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라고 해석했다. 김현수가 버티자 단장, 감독 등이 전방위적으로 압박했다.

한화는 2013년 시즌이 끝난 뒤 한상훈과 4년 총액 13억 원에 자유계약(FA) 계약을 했다. 2014~2015년 한상훈은 부상과 부진에 시달려 몸값을 못했다. 구단은 2015년 말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했다. FA 계약이 2년이나 남았지만 전격 방출한 것이다. 프로야구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한화는 방출에 조건을 걸었다. 한상훈에게 육성선수(연습생) 신분으로 계속 팀에 남으라는 편법을 제안했다. ‘재기할 기회를 준다’는 게 명분이었다. 하지만 한상훈은 “구단 관계자들은 내가 잔여 연봉을 받고, 다른 팀에서 부활하면 지탄 받을까 두려워했다”고 상황을 전했다. 한상훈이 반발하면서 양측은 잔여 연봉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여기까지는 둘이 비슷한 길을 걸었지만, 이후 해법 과정은 사뭇 달랐다. 김현수에 대해서는 메이저리그 선수 노조가 지원 의사를 밝혔고, 에이전트가 움직였다. 또 규정대로 ‘마이너리그 거부권’을 행사했다. 구단이 백기를 들었다. 김현수는 4일 메이저리그 25인 로스터에 포함됐다.

한상훈은 모든 걸 혼자서 감당했다. 보호 규정도 없었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등록선수를 함부로 육성선수로 전환시킬 수 없도록 규정을 고쳤을 뿐이다. 우여곡절 끝에 한상훈은 다른 팀과 자유롭게 계약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하지만 시기적으로 이적 시장이 마감된 터라, 재기의 꿈은 그만큼 멀어졌다.

한상훈은 “당연한 권리를 얻은 대가”라고 말했다. 한상훈과 김현수. 이번에 빅리그의 ‘민낯’까지 함께 봤지만, 우리의 현실에 씁쓸함이 더 큰 건 사실이다.

윤승옥 채널A기자touch @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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