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던 스피스(미국)는 사상 네 번째 대회 2연패의 대관식만을 남겨두고 있는 듯 보였다. 11일 미국 조지아 주 오거스타내셔널골프클럽(파72)에서 열린 제80회 마스터스 마지막 4라운드 전반을 5타차 선두로 마쳤을 때였다. 10, 11번 홀에서 연속 보기로 주춤거리긴 했어도 여전히 1타차 선두였다.
하지만 12번 홀(파3·155야드)에서 골프 역사에 남을 참사가 일어났다. 그린 앞 ‘레이의 개울’에 공을 두 번 빠뜨리면서 2연패 꿈도 잠겨버렸다. 9번 아이언으로 한 티샷은 짧았고, 해저드 티에서 한 세 번째 샷은 어이없이 뒤땅을 쳤다. 5번째 샷은 그린 뒤 벙커에 떨어졌다. 6타 만에 공을 겨우 그린에 올린 뒤 홀아웃해 스코어 카드에 ‘7’자를 적었다. 메이저 대회에서 트리플 보기 이상을 기록한 적이 없던 스피스는 마치 주말골퍼처럼 ‘냉탕온탕’을 반복한 끝에 쿼트러플보기로 무너져 5위까지 밀렸다. 지난해 1라운드 8번 홀부터 시작된 129홀 연속 선두 행진이 멈추는 순간이었다. 13, 15번 홀(이상 파5)에서 버디를 낚으며 추격에 안간힘을 썼지만 승부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마스터스에서는 까다롭기로 소문난 아멘코너(11~13번홀)를 통과하기 전까지는 누구도 챔피언이 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골든벨’이라는 별명이 붙은 12번 홀 자리에서 아메리칸 인디언의 무덤이 발견된 뒤에는 그 영혼 때문에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는 미신까지 전해지고 있다. 스피스는 2014년 대회 때도 12번 홀에서 티샷을 물에 빠뜨리며 우승 경쟁에서 멀어졌다. 저주에 휘말린 듯 뼈아픈 역전패를 떠안은 스피스는 “후반 들어 파만 해도 충분하다는 생각에 소극적인 플레이를 했던 게 독이 됐다. 12번 홀에서는 티샷을 페이드로 치려다 충분한 비거리가 나오지 않았다”고 아쉬워했다. 현장을 지켜본 나상현 해설위원은 “대회 기간 바람이 많이 불고 그린이 딱딱해 스피스의 최대 강점인 퍼팅이 위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마지막 날 바람이 잠잠해진 게 스피스에게는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했다. 우승 부담이 있었던지 평소와 달리 전반적으로 스윙이 흔들렸다”고 분석했다.
스피스는 전통에 따라 대니 윌릿에게 그린재킷을 입혀주다 휘청거리며 중심을 잃기도 했다. “운명은 서서히 그리고 갑자기 찾아왔다. 최악의 30분이었다. 다신 경험하고 싶지 않다.” 혹독한 시련을 겪은 23세 스피스에게는 자신의 표현대로 한동안 치유의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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