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LG에서 한솥밥을 먹다 KIA로 이적한 이대형(kt)을 놀리던 이진영(kt)의 모습이 TV 중계 화면에 잡힌 적이 있다. 이진영은 고개를 바닥에 닿을 듯 기울이며 이대형의 타격 폼을 따라했다. 하지만 이진영 역시 남부럽지 않은 독특한 타격 폼을 갖고 있다. 상체와 방망이를 수직에 가깝게 꼿꼿이 세우는 폼이다. 상체를 수평에 가깝게 기울이는 이대형의 폼과는 ‘극과 극’이다.
두 선수가 지금의 독특한 타격 폼을 갖게 된 사연도 정반대다. 이진영은 고교 시절 폼을 완전히 버렸다. “프로에 오니 빠른 공에 방망이가 밀렸다. 고민이 많던 2002년 하반기에 당시 SK 주루코치였던 신원호 코치님이 방망이를 우산 들듯 잡고 편하게 서 있으라고 조언해 주셨다. 타격코치도 아닌 분이 그럴 정도면 내가 치는 게 얼마나 답답했겠나(웃음). 그때 잡아주신 폼으로 처음 3할을 쳤다. 그게 지금까지 야구를 할 수 있는 큰 힘이 됐다.”
이대형은 고교 시절 몸에 밴 습관을 폼으로 만들었다. 김용달 전 LG 타격코치는 “내가 지도할 당시에는 대형이에게 빠른 발이란 무기가 있으니 타격 포인트를 앞쪽에 둬 살아 나갈 확률을 높이는 데 초점을 뒀다. 이후 다른 지도자들에게 많은 지적을 받았다”고 말했다. 만나는 코치마다 타격 때 두 발이 고정되지 않는 그의 폼을 손보려 애썼고 결과는 혼란이었다.
결국 몸에 맞는 조언만 골라 지금의 폼을 완성했다. 과거보다 상체를 뒤로 뺐고, 두 발의 간격은 넓혔다. 스윙 면적도 넓히고 볼도 더 잘 보기 위한 것이었다. 이대형은 “공을 올려다보면서 스윙 궤도를 컨트롤할 수 있는 폼이 필요했다. 아예 앉아서 쳐보자는 생각을 했고 그게 지금의 타격 폼이 됐다”고 설명했다.
특이한 타격 폼 하면 빠질 수 없는 선수가 또 있다. LG 정성훈이다. 그는 타석에서 헬멧 위에 방망이를 올려놓고 공을 기다린다. ‘어떻게 그런 폼을 갖게 됐느냐’는 우문에 그는 현답을 내놨다. “공을 치기 전 나에게 가장 편한 자세를 찾은 것이다. 선수마다 키, 몸무게, 호흡 등이 다르기 때문에 준비 자세도 다 다르다. 내 폼이 특이하다고들 하는데 사실 선수 중 같은 폼을 가진 선수는 하나도 없다. 준비 자세는 달라도 결국 공을 방망이 중심에 맞힐 때 모양은 거의 비슷하다.”
이진영도 같은 생각이다. “폼은 체형이나 습관에 따라 다 다르다. 자기가 편한 자세로 치면 된다. 중요한 건 폼보다 중심에 맞히는 것이다. 후배들에게도 연습 때 의미 없이 멀리 치려 하지 말고 공을 정확히 맞히는 데 집중하라고 한다.”
한국의 전통 건축에는 뒤틀리고 휜 나무를 그대로 기둥과 대들보로 쓰는 경우가 많다. 임석재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는 ‘우리 옛 건축과 서양 건축의 만남’이라는 책에서 그 까닭을 이렇게 설명했다. ‘나무가 없어서 그랬을까, 아니면 나무 찾아다니기가 귀찮아서 그랬을까. 둘 다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휜 나무를 기피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휜 나무도 곧은 나무와 조금도 다름없이 기둥으로서의 구조 역할을 거뜬히 해낼 수 있다.’
‘정석’과는 거리가 먼 타격 폼으로 프로의 세계에서 20년 가까이 살아남은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자신만의 타격을 정립하지 않고 선수생활을 오래하기란 불가능하다. 남들 눈에 예쁘지 않아도 확실한 내 것을 찾은 18년 차 정성훈과 이진영, 14년 차 이대형은 그렇게 소속 팀의 든든한 기둥이 됐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