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축구계의 시선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의 안방인 올드트래퍼드로 향하고 있다. 통상 시즌 막바지가 되면 우승권에 있는 맨유가 안방에서 승점을 추가할 수 있느냐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지만 이번엔 상황이 다르다. 다음 달 1일 레스터시티와 맞붙는 맨유가 상대의 우승을 저지하는 ‘고춧가루 부대’ 역할을 할 수 있을지가 화제이기 때문이다.
2015∼2016시즌 EPL 돌풍의 주역인 레스터시티는 28일 현재 리그 선두(승점 76점)를 달리고 있다. 레스터시티가 올드트래퍼드에서 맨유를 꺾으면 창단 후 첫 우승을 차지한다. 3일 2위 토트넘(승점 69점)이 첼시를 꺾어도 리그 경기가 2경기밖에 남지 않아 승점 7점 차를 뒤집을 수 없다.
부진한 경기력으로 리그 5위에 머무르는 등 시즌 내내 경질설에 휩싸였던 루이스 판할 맨유 감독은 이례적으로 아군과 적군으로부터 많은 응원을 받고 있다. 맨유의 자존심을 지키는 동시에 우승 경쟁을 안갯속으로 빠져들게 해달라는 것. 맨유 수비수 출신인 리오 퍼디낸드는 “맨유의 안방에서 다른 팀이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장면은 볼 수 없다”고 말했다. 2위 토트넘의 공격수 해리 케인은 “레스터시티의 불행이 토트넘의 행복이다. 맨유가 우리를 도와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토트넘의 손흥민은 “아직 시즌이 끝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실망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손흥민은 같은 포지션 경쟁자인 델레 알리가 징계를 받아 결장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첼시전 선발이 유력하다.
레스터시티는 잉글랜드 리그 최다 우승팀(20회)인 맨유의 안방에서 우승을 확정짓겠다는 각오다.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레스터시티 감독은 “우리는 훌륭한 시즌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오래도록 기억될 만한 일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승을 통해 역사에 팀 이름을 남겨야 한다”고 말했다. 유벤투스(이탈리아) 등 명문 팀을 지휘하고도 우승과는 인연이 없어 ‘B급 명장’으로 불렸던 라니에리 감독과 공장 노동자 출신인 공격수 제이미 바디(22골), 주목받지 못했던 알제리 출신의 미드필더 리야드 마흐레즈(17골·사진)는 ‘인생 역전’을 눈앞에 뒀다. 특히 잉글랜드 프로축구선수협회(PFA)가 선정한 ‘올해의 선수’에 뽑힌 마흐레즈는 FC바르셀로나(스페인) 등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마흐레즈의 이적료는 2014년 레스터시티로 옮길 당시 40만 파운드(약 6억6350만 원)에 불과했지만 현재는 2500만 파운드(약 414억 원)까지 치솟았다.
강등 후보와 중위권으로 분류됐던 레스터시티와 토트넘이 맹활약을 펼치면서 전통의 강호인 ‘EPL 빅4(맨유, 아스널, 첼시, 리버풀)’는 몰락했다. 아스널은 시즌 막판 승수 추가에 실패하면서 4위로 내려앉았다. 최근 6시즌 동안 4위를 차지한 것만 세 번인 아스널의 아르센 벵거 감독은 팬들의 퇴진 운동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아스널과 맨유는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본선에 직행할 수 있는 3위 안에 들기 위해 경쟁을 벌이고 있다. 리버풀(7위)과 첼시(9위)는 UEFA 챔피언스리그 예선(4위) 진출권 획득도 쉽지 않다. ‘신데렐라 스토리’ 완성을 꿈꾸는 레스터시티와 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로 자존심을 지키려는 ‘무너진 명가’들 간의 경쟁이 종착역에 다다른 EPL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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