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벌레’는 아니라고? 진종오 “야간에 혼자 훈련 했더니”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16일 17시 35분


‘사격 황제’ 진종오(37·kt)가 사선에 서서 매서운 눈으로 표적을 바라볼 때면 좀처럼 긴장한 모습을 찾기 힘들다. 뼈아픈 실수로 일그러진 표정을 짓는 것보다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서 활짝 웃는 모습이 익숙한 그는 ‘스마일 총잡이’로 불린다.

그러나 완벽한 경기 운영으로 ‘입신(入神)의 경지’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는 진종오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앞두고는 부담감이 크다. “올림픽만 네 번째인데…. 자신감은 생기지 않고 갈수록 부담만 커져서 큰일이네요. 하하.” 멋쩍게 웃은 그였지만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사격 역사상 최초의 올림픽 개인종목 3연패에 도전하는 진종오가 자신의 어깨에 지워진 부담을 떨쳐내기 위한 싸움을 시작했다.

“오래도록 올림픽에서 정상을 지키는 비결이 궁금해요.” 여자 사격대표 김장미(24)가 선배 진종오를 두고 한 말이다. 진종오는 지난달 올림픽 D-100 미디어데이에서 “가장 큰 적인 부담감만 극복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었다. 진종오는 “당시에 한 말은 조언이라기 보단, 내 스스로 다짐을 한 것에 가깝다. 메달리스트에 대한 주위의 기대 때문에 욕심을 부리면 경기를 망칠 수 있다”고 말했다.

5개의 올림픽 메달을 가진 진종오는 리우 올림픽에서 메달 2개를 추가하면 역대 한국 선수 최다 메달 기록(양궁 김수녕·6개)을 경신하게 된다. 그러나 진종오는 부담이 큰 각종 타이틀 획득을 올림픽 목표로 잡지 않았다. 대신 올림픽 무대를 ‘마음껏 즐길 곳’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진종오는 “17살이었던 고등학교 1학년 때 정식으로 총을 잡은 이후 타이틀을 얻기 위해 운동을 한 적은 없다. 총 쏘는 것이 좋아 20년을 즐기다보니 타이틀이 따라왔다”고 말했다. 그는 “타이틀에 집착하면 시차, 지카 바이러스 공포 등도 모두 스트레스가 된다”며 “리우데자네이루를 이를 악물어야 할 ‘결전의 장소’로 보지 않을 것이다. 그저 ‘이번에는 여기서 원 없이 총을 쏘면 되는구나’라고 생각할 것이다”고 말했다.

부담을 떨쳐내기 위한 진종오의 노력은 평소 생활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주위의 시선에서 벗어나기 위해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혼자 훈련을 할 때가 많다. 그에 대한 주변인의 평가와 실제가 갈리는 부분이다. 한 사격 관계자는 “대학생 때 축구를 하다가 오른쪽 어깨를 다친 진종오는 5㎝ 길이의 금속핀을 박았다. 이 때문에 짧은 시간에 집중력을 끌어올려 훈련을 한다”고 말했다. “‘연습벌레’보다는 ‘집중력의 화신’이라는 평가가 많다”는 질문에 진종오는 “연습하는 모습을 (주위에) 너무 보여주지 않았나보다”라며 웃었다. 그는 “훈련도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각종 부담에서 벗어나 심리적 안정을 찾기 위해 야간에 아무도 없는 훈련장에서 혼자만의 싸움을 즐기는 때가 더 많다”고 말했다.

4년 전 런던 올림픽을 앞뒀을 때만 해도 진종오는 훈련이 없을 때는 낚시를 즐기면서 안정을 찾았다. 하지만 올해는 빡빡한 대회 일정 탓에 낚싯대를 잡을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요즘 그에게 유일한 위안거리는 독서다. 진종오는 “최근에 혜민 스님의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을 읽었는데 올림픽 부담을 떨쳐내는 데 도움이 됐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편안한 마음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해외에 나갈 때마다 항상 책을 챙겨가는 등 ‘독서광’으로 알려진 그는 자신의 카카오톡 사진에 “어떤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면, 열심히 한 뒤 결과를 감내해야 한다”는 ‘마크툽’의 글이 실린 한 페이지를 올려놓았다.

리우 올림픽 대표 선발전이 끝난 이후부터 진종오의 성적은 다소 부진하다. 프레올림픽 등 2개 대회에서 모두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진종오는 “피로가 누적돼서 컨디션이 조금 좋지 않지만 생각하기 나름이다. 사람이 항상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진종오는 국제사격연맹(ISSF) 뮌헨 월드컵사격 대회(20~25일)에 참가하기 위해 16일 출국했다. 진종오는 “비행기에서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책을 읽어볼 생각이다. 이번 대회는 올림픽을 위한 연습경기로 생각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다녀오겠다”고 말했다.

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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