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2016시즌 KCC프로농구에서 초보 감독으로 팀을 준우승으로 이끈 KCC의 추승균 감독(42)을 12일 만났다. 챔피언결정전에서 오리온에 우승을 내준 패인에 대한 추 감독의 생각을 듣고 싶어서였다. 지난 시즌 정식 감독으로 데뷔한 추 감독은 정규리그 후반 12연승을 거두며 팀을 정규리그 정상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하며 통합 챔피언 등극을 다음으로 미뤘다.
○ 후회
챔피언결정전이 끝난 지 두 달이 넘었지만 추 감독은 여전히 아쉬움을 떨쳐 내지 못했다. 가장 큰 아쉬움은 오리온을 상대로 공격으로 맞불 작전을 놓은 것이었다. 수비를 좀 더 강화했다면 다른 결과를 얻지 않았을까 하는 미련이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공격 대 공격으로 오리온과 맞붙으면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죠. 그게 오답이었습니다. 오리온과 60∼70점대에서 승부를 보는 농구를 펼쳤어야 했어요.”
챔피언결정전에서 1차전을 승리한 추 감독은 2차전부터 내리 3경기를 대패했다. 빠른 공격으로 오리온의 수비를 압박하려 했지만 계산이 어긋났다. 적극적으로 리바운드를 따내지 못한 채 무리하게 공격만 하다 보니 오리온에 속공 기회만 허용했다.
“그래서 3차전부터 세트 오펜스(약속된 팀 공격 전술로 공격 제한 시간을 충분히 활용하는 작전)를 하라고 주문했는데 이미 그때는 ‘불가항력’이었어요. 정규리그에서 오리온이 했던 수비를 분석하고 전술을 준비했지만 연습 때의 움직임이 나오지 않더라고요.”
챔피언결정전을 앞두고 전문가들은 KCC의 우세를 점쳤지만 정작 추 감독은 불안했다고 했다.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인 KGC전에서 좋지 않은 조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추 감독은 “KGC와 점수 차가 벌어져서 송교창, 김민구 등 ‘식스맨(후보 선수)’들을 다 투입했는데 이상한 플레이가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아, 플레이오프 이후부터 걱정이다’라는 생각을 했죠. 불안했는데 결국 주전과 식스맨들의 격차를 줄이지 못한 게 나의 큰 실수였죠”라고 말했다.
주변의 기대가 시야를 가린 면도 컸다. 추 감독은 “시즌 초중반까지만 해도 ‘6강이면 잘했지’라고 했는데 어느새 목표가 챔피언이 돼버렸어요. 그러다 보니 작전이나 교체 타임을 잡는 게 쉽지 않을 정도로 부담을 갖게 됐죠”라고 털어놨다.
○ 확인
소득도 있었다. 추 감독은 챔피언결정전 마지막 경기를 지고 나서는 희망을 봤다고 했다.
“시즌을 시작하면서 가장 걱정됐던 게 선수들의 패배 의식을 어떻게 지울 것인가였어요. 그래서 대학팀과 연습 경기를 할 때도 무조건 이기라고 했어요. 정규리그 중반 삼성전에서 20점 차로 뒤지고 있는 경기를 역전시키고 이어 전자랜드전에서도 연장에서 이기고 난 뒤부터는 작전 타임이 필요 없게 되더라고요. ‘져도 된다’고 해도 이기니 저나 선수 모두 진다는 생각을 안 하게 됐었죠.”
추 감독은 선수들과의 눈높이 소통이 중요하다는 농구 철학도 다시 되새길 수 있었던 시즌이었다고 했다. 자기만의 농구 스타일을 고집하는 요즘 선수들의 성향을 추 감독은 뒤집지 않았다.
“KCC가 안드레 에밋의 팀이라고 하는데 사실 4라운드부터 에밋의 활약은 강렬했죠. 하지만 처음엔 에밋도 힘들어했어요. 그래서 에밋에게 먼저 ‘원하는 공격 패턴이 뭐냐?’라고 물어봤어요. 에밋의 답을 받고 ‘그래, 내가 너를 위한 공격 패턴을 다 만들어 줄 테니까 내 말도 들어줘’라고 했죠. 그러면서 에밋과 대화를 많이 했어요. 선수가 무엇을 원하는지 먼저 들어야 하는 시대인 것 같아요. 그 다음 내 요구 조건을 얘기하니 훨씬 소통이 잘되더군요.”
한 시즌을 치르면서 스스로 감정을 조절하는 기술도 늘었다고 했다.
“KCC의 선수들이 개인기가 좋다지만 아직도 공을 잡으면 ‘종착역’입니다. 움직이는 플레이가 안 된다는 거죠. 그래도 올 시즌 라커룸에서 화를 낸 게 아마 다섯 손가락에 꼽을 듯싶어요. 화가 나도 그날은 무조건 참고 다음 날 코치들과 대화를 해서 풀어요. 답답하지만 그럴 때마다 선수 때 모신 감독들을 생각하며 ‘아, 그분들도 힘들었겠구나’ 하고 위안을 삼습니다.”
감독으로서 느끼는 한계를 선수들의 집중력으로 돌리는 노하우를 얻은 것도 추 감독이 생각하는 소득이었다.
“시즌 초반에는 소리를 많이 질렀는데 나도 지도력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니 태도가 바뀌게 됐어요. 4라운드부터는 양복 상의 단추를 잠그고 선수들에게 ‘연습 때는 어려운 점을 감독이 다 해결해 줄 수 있지만 경기 중에 나를 쳐다보면 지는 거다’라고 얘기했죠. 선수들의 경기 집중력이 한층 나아지는 걸 느꼈습니다. 비록 저는 더워서 죽을 뻔했지만요.”
국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운 추 감독은 “저는 어떤 감독을 롤 모델이라고 한 적이 없다”며 다음 시즌에는 자신만의 스타일로 KCC의 색깔을 제대로 칠해 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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