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챈들러의 한국 블로그]파티 같은 한국 야구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24일 03시 00분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루크 챈들러 미국 출신·서울대 국제대학원 재학
루크 챈들러 미국 출신·서울대 국제대학원 재학
뜨거운 여름이 되면 고소한 땅콩 냄새, 시원하게 펼쳐져 있는 잔디구장, 배트에 공이 맞는 타격 소리가 가장 먼저 떠오르곤 한다. 나는 다섯 살 때 아버지에게 처음 야구를 배우기 시작해서 대학을 다닐 때까지 야구선수로 활동했다. 또 가족과 함께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응원하러 거의 일주일에 한 번 야구장에 갔다. 성인이 되어 야구장에서 즐겨 마셨던 맥주와 핫도그는 즐거움 중 하나였다.

한국 생활 초반엔 미국 야구를 가장 그리워했다. 그러나 그 그리움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야구장을 방문한 이후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한국에 도착한 지 몇 달 후, 친구의 초대로 한화 이글스의 경기를 보러 가게 됐다. 잠실구장에 들어가는 순간 파티장에 온 것 같았다. 목이 쉴 정도로 쉼 없이 응원하는 치어리더부터, 나오는 선수마다 다양하게 부르는 응원가까지 이렇게 역동적인 응원 문화는 처음 접해 봤다. 몇 시간 동안 함께 응원을 하다 보니 어느새 모든 관중과 오래된 친구가 된 느낌이 들었다. 어느덧 한국의 야구 문화는 자기가 좋아하는 팀을 응원하는 것을 뛰어넘어 스트레스를 푸는 공간, 문화생활을 하는 공간으로 발전했다. 직장 동료끼리 퇴근 후 야구장에서 치맥을 먹기도 하고 커플마다 셀카를 찍으며 야구장 데이트를 즐기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한국 야구 경기는 지루할 틈이 없다. 중간에 진행하는 이벤트도 볼거리 중 하나이기에 이닝 사이에 화장실을 가는 것보다 오히려 경기 도중에 빨리 갔다 와야 한다. 경기 중엔 관중 앞에 서 있는 응원단장의 역할 또한 중요하다. 마치 지휘자처럼 수많은 관중을 지휘하고 이끌어 다 같이 한마음, 한목소리가 되게 만들어 준다.

여러 경기를 관람하며 살펴본 결과 롯데 자이언츠 팬들의 응원 문화는 정말 독특하고 열정적이었던 것 같다. 응원봉 대신 신문지를 찢어 흔들고 머리에 주황색 봉투를 쓰면서 ‘부산 갈매기’를 부르는 모습은 미국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렇기에 그 충격과 감동은 더 크게 느껴졌다.

내가 좋아하는 한화 이글스 팬들의 상징은 ‘인내’라고 들었다. 크게 져도 항상 웃으면서 끝까지 응원하는 팬들이 많다고 한다. 처음에 인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정확하게 번역할 수 있는 영어 단어가 없어서 그 의미가 혼란스러웠다. 그런데 경기를 몇 년간 보면서 그 의미를 서서히 깨달았다.

응원 방법도 다르고 팬의 특징도 팀마다 다르지만 그 열정은 다 똑같다. 야구는 9회말 투아웃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아무리 지고 있어도 언제든지 역전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에 열정적으로 끝까지 “최-강-한-화”라고 응원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 한국 야구도 많은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 것 같다. 외국인 용병 선수들을 늘리고 있고 연봉 제한선도 폐지했다. 지속적으로 그 수를 늘린다면 미국처럼 반 이상의 선수들이 외국인 용병들로 채워질 가능성도 있다. 또한 응원 문화에서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미국 야구장은 외부 음식, 음료 반입이 금지돼 있다. 그래서 그 안에서 1만 원 이상을 지불해야만 맥주를 마실 수 있다. 안전과 위생 때문에 한국도 소주와 캔 맥주 반입에서부터 최근에 생맥주를 파는 ‘맥주보이’를 잠시 금지시키기도 했다. 이렇게 변화와 제약이 많아지면 한국 야구만의 경기력, 열정적이고 독특한 야구 문화에 부작용이 생길 것 같아 우려된다.

한국 야구는 선수들의 실력과 경기력도 훌륭하지만 응원하는 팬들과 그 문화 또한 대단한 것 같다. 앞으로 이렇게 한국만의 경기력과 독특한 문화가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이제 여름을 생각하면 땅콩과 핫도그 대신 마른 오징어와 치맥이 먼저 떠오른다.

루크 챈들러 미국 출신·서울대 국제대학원 재학
#한국 야구#야구 응원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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