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팀 유럽원정 20명 중 K리거 4명 스페인전 해외파 10명 선발 기대이하 이재성·주세종 후반 교체투입에 활력
브라질월드컵이 끝나고 위기의 한국대표팀 사령탑에 취임한 울리 슈틸리케(62·독일) 감독은 데뷔무대인 2014년 10월 파라과이, 코스타리카와의 2연전을 앞두고 23인의 태극전사들을 불러들였다. 당시 눈길을 끈 대목은 국내파의 비중. 9명의 K리거들이 합류했다. “팀 내 활약이 중요하다”는 대표팀 선발기준을 정한 슈틸리케 감독은 꾸준히 그 같은 기조를 이어갔다. 지난해 1월 호주아시안컵은 6명으로 다소 적었지만, 2018러시아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과 각종 평가전에 대비해 적게는 5∼6명, 많게는 11명까지 국내파의 비중을 유지했다.
그러나 올 들어 기류가 확 달라졌다. 3월 레바논과의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G조 7차전, 태국과의 원정 평가전에 맞춰 따로 구성된 대표팀에는 K리거가 거의 없었다. 각각 3명, 5명에 불과했다. 당시 슈틸리케 감독은 “경기감각이 떨어진 유럽파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는 이유를 들었다.
스페인과 체코를 상대로 한 6월 유럽 원정 2연전을 앞두고도 대표팀 구성은 딱히 바뀌지 않았다. 총 20명 가운데 황의조(성남FC), 이재성(전북현대), 주세종(FC서울), 이용(상주상무) 등 4명만이 K리거다. 지난해까지 K리그에서 뛰다 새 시즌을 앞두고 해외무대로 떠난 몇몇 선수의 신변 변화를 고려하더라도 국내파의 비중은 크게 줄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첫 유럽 원정임을 고려해 유럽파 선수들을 더 신뢰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대표팀의 진짜 ‘믿을 맨’은 국내파였다. 2일(한국시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레드불 아레나에서 끝난 스페인과의 평가전에서 대표팀의 딜레마가 여실히 드러났다. 20년만의 6실점, 그것도 5골차 대패로 끝난 이날 경기에서 제 몫을 해낸 것은 유럽파도, 중동파도 아니었다.
전반 라인업은 원톱 황의조를 제외한 10명 모두가 해외파였다. 최정예에 가까운 구성이었으나 기대와 달리 내내 흔들렸다. 장거리 이동으로 인한 피로, 실패한 시차적응 등을 원인으로 꼽을 수 있겠지만, 대패의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부족한 출전시간(기회) ▲떨어진 페이스 ▲미흡한 경기감각 등 해결되지 않은 고질에 발목을 잡혔다.
끔찍하도록 답답한 흐름이 이어진 후반 15분, 한국 벤치의 선택은 그나마 희망적 요소로 작용했다. 손흥민(토트넘), 한국영(카타르SC) 대신 투입된 이재성, 주세종은 활발한 플레이로 자신감을 잃은 팀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중원을 부지런히 누비며 상대 진영으로 적극 침투했다. 특히 주세종은 유일하게 골 맛도 봤다. 슈틸리케 감독이 “우리가 기대한 경기가 나왔다”고 유일하게 지목한 시점도 둘의 교체투입 이후부터다.
물론 이재성과 주세종의 벤치 대기는 일찌감치 예견됐다. 슈틸리케 감독은 주말 K리그 클래식(1부리그) 일정으로 다른 선수들보다 하루 늦게 합류한 둘에게 “체코전(5일 프라하)에 맞춰 준비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름값 높은’ 해외파보다 ‘꾸준히 뛴’ 국내파가 실전에선 훨씬 가치가 있음을 재입증한 스페인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