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에서 스페인은 6위, 한국은 50위다. 객관적 전력차를 인정하면서도 내심 선전을 기대했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 부임 이후 우리 대표팀이 과거 어느 때보다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더욱이 ‘전북현대발 심판 게이트’로 인해 국내축구계가 뒤숭숭한 터라 대표팀이 분위기를 바꿔줄 수 있기를 바라기도 했다. 2012년 꼭 이맘때 스페인과 만나 1-4로 패한 사실을 알면서도 적어도 그 때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리라 믿었다. 그러나 1-6으로 끝난 결과는 너무도 허무했다.
2001년 ‘오대영’이 떠오른다. 2002한·일월드컵을 1년여 앞둔 2001년 5월 30일.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끌던 한국은 안방에서 펼쳐진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프랑스에 0-5로 완패했다. 두 달 보름여 뒤 체코 원정에서 또다시 0-5로 대패했다. 한동안 히딩크 감독과 선수단에 ‘오대영’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따라다녔다.
말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는 누리꾼들은 이번 스페인전을 두고 “6월 1일이라 6-1로 졌다”고 비꼬고 있다. 그만큼 충격적인 결과다. 슈틸리케 감독은 취임 이후 줄기차게 강한 상대와의 평가전을 원했고, 스페인은 사실상 그 첫 상대다. 그동안 주로 만났던 아시아권 국가들과는 클래스가 다르다. 그렇더라도 1-6은 납득하기 힘들다. 더욱이 치명적인 미스 플레이가 연이어졌다.
그렇다고 스페인전 결과에 너무 매몰돼서도 안 된다. 그에 앞서 거둔 값진 열매를 일부러 폄하할 이유도 없다.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다. 9월이면 2018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이 시작된다. 9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나서기 위한 최종관문이다. 언제부터인가 ‘월드컵 본선은 당연히 가겠지’라는 생각이 만연해 있지만, 이는 오만한 생각이다. 이번 최종예선도 결코 만만치 않다.
스페인전이 쓰디 쓴 보약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때 ‘오대영’이라는 비아냥에 시달렸던 ‘히딩크호’는 좌절과 아픔을 딛고 월드컵 4강 신화를 일궜다. 슈틸리케 감독과 선수들 역시 이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야 한다. 냉정하게 패인을 분석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한편 잃어버린 자신감도 되찾아야 한다.
대표팀은 당장 5일 체코와 유럽 원정 2차 평가전을 앞두고 있다. FIFA 랭킹 30위의 체코 역시 15년 전 우리에게 ‘오대영’의 굴욕을 안긴 팀이다. 체코전도 길게 보면 러시아로 가는 과정에 있다. 위기에선 빨리 정상궤도를 되찾는 능력도 필요하다. 스페인전과 다른 모습, 다른 결과가 나오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