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발진 운영을 어떻게 했는지 알 수 있는 지표는 많다. 최근 퀄리티스타트(6이닝 이상 투구 3자책점 이하)와 그 반대인 퀵후크(3실점 이하의 투수를 6회 이전에 바꾸는 것)가 일반화됐다. 그러나 불펜운영에 대한 수치는 제한적이다. 기출루자(IR·Inherited Runners)와 관련된 지표를 통해 각 팀의 불펜운영 철학을 엿볼 수는 있다.
기출루자는 불펜투수가 등판했을 때 누상에 있는 주자의 수를 말한다. 주자가 없을 때 등판할 경우 0, 주자 만루의 경우 3이다. 6일까지 각 팀 불펜의 기출루자 평균은 120이다. 그러나 팀별로 편차는 크다.
넥센은 기출루자 수가 단 70명에 불과하다. 반면 가장 많은 한화는 200명이다. 극명한 차이다. 반면 불펜투수가 앞선 투수가 남겨둔 주자의 득점을 얼마나 허용했는지 나타내는 기출루자 득점허용률은 두 팀이 비슷하다. 넥센은 70명 중 28명의 득점을 허용해 0.400이고, 한화는 200명 중 87명으로 0.435다. 기출루자 득점허용률 1위는 한화, 2위는 넥센이다.
● 넥센의 기출루자가 가장 적은 이유는?
넥센의 기출루자가 유독 적은 이유는 팀 사정 탓이다. 넥센은 올 시즌을 앞두고 손승락의 FA(프리에이전트) 이적에 한현희, 조상우가 차례로 수술대에 올랐다. 지난해까지 뒷문을 지켜준 3명의 필승조가 모두 증발해 버린 셈. 결국 약해진 불펜의 힘을 극대화시키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김세현이 ‘초보 마무리’란 점도 감안해야 했다.
자기가 내보내지도 않은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마운드에 오르는 건 투수들에게 상당한 압박감을 준다. 해당 주자의 득점을 허용해도 앞선 투수의 방어율이 오를 뿐이지만, 팀의 승패와 직결된 상황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경험이 부족한 투수들에게 이보다 가혹한 일도 없다.
염경엽 감독을 포함한 넥센 코칭스태프는 새롭게 불펜진을 책임지게 된 투수들에게 최대한 편안한 상황을 만들어 주려하고 있다. 득점허용률은 다소 높지만, 기출루자 수가 적기에 팀에 오는 부담감도 최소화시키고 있다. 어린 투수들의 성장과 팀 성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잡을 수 있는 셈이다.
● 기출루자 숫자로 드러나는 감독의 색깔
마운드 운영에 있어 선이 굵은 야구를 추구하는 감독들은 대체로 기출루자수가 적다. 두산이 83명으로 최소 2위, KIA가 89명으로 3위, NC가 97명으로 4위다. 두산 김태형 감독과 KIA 김기태 감독, NC 김경문 감독 모두 짧게 끊어가기 보다는 등판한 투수가 이닝을 마치거나 상황을 종료시키는 걸 선호한다.
반면 한화는 가장 많은 200명의 주자를 두고 투수를 교체했다. ‘불펜야구’를 신봉하는 김성근 감독 특유의 스타일이 반영된 결과다. 그러나 기출루자 득점허용률 1위(0.435)라는 불명예 기록도 뒤따른다. 투수교체가 효율적이지 못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김성근 감독과 마찬가지로 투수 출신인 LG 양상문 감독도 156회로 최다 2위를 기록했다. 10개 구단 중 투수 출신 사령탑은 김성근 감독과 양상문 감독뿐이다. 아무래도 투수 출신이다 보니 짧게 끊어가는 운영을 선호한다.
재미있는 건 지난해 기출루자수 최소 1위(191명)였던 삼성이 올해는 최소 6위(123명)로 뒤바뀌었다는 점이다. 불펜이 얇아진 마운드 사정을 반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