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상 김국영(25·광주광역시청)이 ‘100m 한국 기록 보유자’ 타이틀을 얻은 건 2010년이다. 그의 나이 열아홉 때다. 어린 나이에 쓴 왕관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처음 한국기록을 깨고 나서는 하나하나가 다 부담이었어요. 어린 나이에 스트레스 엄청 받았죠. 늘 잘되라는 법은 없잖아요. 100m라는 종목이 워낙 예민해서 뭐 하나 삐끗하면 끝나기도 하고.”
김국영이 다시 자신을 넘어서기까지는 5년이 걸렸다. 2015년 광주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김국영은 100m를 10초 16에 갈랐다. 개인 최고 기록이자 자신에 세웠던 한국 최고 기록을 0.07초 앞당긴 것. 10초 16은 100m 올림픽 기준기록이어서 김국영은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출전권도 얻었다. 한국 단거리 육상 역사에서 ‘올림픽 출전권 자력 획득’은 처음이다.
하지만 김국영은 만족하지 않는다. 그는 200m 올림픽 기준기록(20초50) 통과로 도전을 넓혔다. “200m 한국 신기록이 나온 지가 31년으로 너무 오래됐어요. 100m보다 어려운 건 맞지만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하지 않을까 욕심이 났어요.” 한국기록을 거듭 경신하며 그동안 자신을 짓누르던 부담도 ‘더 빨라지고 싶다’는 욕심으로 바뀌었다. 부담을 극복하는 데 왕도는 없었다. “훈련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하고 싶은 것 좀 참고, 먹고 싶은 것 참고…. 맛있는 건 운동선수한테 다 쥐약이잖아요.(웃음) 더 좋은 날 오겠지 하면서 참았죠.”
비(非)시즌에는 일본으로 전지훈련을 떠나 근지구력을 끌어올리는 데 구슬땀을 쏟았다. 주 종목 100m보다 200m에 더 자신감이 생길 정도까지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런던 올림픽 때 금메달 따고 ‘나보다 땀 더 많이 흘린 선수 있으면 메달 가져가도 좋다’고 말한 사람(레슬링 김현우)이 있었잖아요. 그 말이 공감됐어요. 훈련을 이렇게 열심히 해놓고 경기에서 자신 없을 수가 없더라고요. ‘그 누구도 내 앞에 가면 다 잡을 자신 있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러나 김국영에게 세계의 벽은 여전히 높다. 그가 올림픽에서 한국기록 경신을 꿈꾸는 이유다. “한국에서 1등 하는 것 좋죠. 하지만 큰 의미는 느끼지 못해요. 그러면 뭐 해요. 세계선수권 나가면 예선 탈락하는 기록인데…. 그래서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에서 한국기록을 세우고 싶어요. 난다 긴다 하는 선수들 다 나오잖아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김국영은 계속해서 세계 대회의 문을 두드릴 작정이다. “형편없는 성적을 받더라도 계속 나가고 싶어요. 계속 두드리면 언젠간 문이 열리지 않을까요. 옆 선수와 3m 차가 나던 게 2m로 줄어들고…. 100m 9초대로 달리는 옆 선수를 제치면 제가 9초대 선수가 되잖아요.” 그는 ‘동양인의 몸으로 어렵다’는 핑계를 대지 않겠다고 했다. “핑계는 한번 대기 시작하면 끝이 없어요. 안 된다고 생각하면 진짜 안 되거든요.”
3년 전 그는 반지를 하나 맞췄다. 투박한 디자인의 금반지다. 올림픽 때도 가장 먼저 챙겨 갈 예정이다. “지금은 지워져서 안 보이는데 목표 기록을 새겼거든요. 9.95라고. 늘 끼고 다녀요.” 왜 콕 집어 9.95냐고 묻자 그의 대답이 재밌었다. “100m 9초대가 목표인데 그렇다고 9.99는 좀 그렇잖아요.”(웃음)
달리기 욕심이 끝이 없어 보이는 김국영에게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느낄 순간이 있을까라고 묻자 망설임 없이 곧장 답이 돌아왔다. “9초대 뛰면요! 그러면 모∼든 욕심 내려놓고 정말 즐기면서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세계선수권에서 남들이 뛰는 거 보기만 했지 제가 (9초대를) 뛰어 보질 못했잖아요. 진짜 느껴 보고 싶어요.”
김국영의 훈련은 자신의 신체 조건에서 가장 빨리 달릴 수 있는 자세를 찾는 지난한 과정의 반복이다. 예선 탈락만 하던 시절부터 아들의 경기라면 강원도건 제주도건 찾아다니는 어머니와 “우리 아가 최고”라며 제자를 끔찍이도 아끼는 심재용 광주광역시청 감독이 없었다면 견딜 수 없었을 시간이다. 훈련은 여전히 고되다. 하지만 아직 더 빨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기쁜 김국영이다. 그래서 김국영은 오늘도 뛴다. 0.2초, 그 찰나의 순간을 줄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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