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현두]스타의 명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8일 03시 00분


이현두 스포츠부장
이현두 스포츠부장
코끼리 감독으로 불렸던 프로야구 김응용 감독에 대한 평가는 세대 간 차이가 크다. 50대 이상에게 김 감독은 최고의 명장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20대에게는 무기력한 꼴찌 감독으로 남아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30여 년 전 강력한 카리스마로 개성 강한 해태 선수들을 하나로 묶어 한국시리즈 우승을 밥 먹듯이 한 김 감독의 전성기 때 모습을 직접 봤던 50대와 달리 20대는 2년 내내 꼴찌에서 헤매는 한화 감독으로서의 모습만 봤기 때문이다. 물론 20대도 김 감독의 화려했던 시절을 모르지는 않는다. 그래서 프로야구 무대에서 물러나 야인이었던 김 감독이 2012년 한화 감독으로 부임했을 때 환호를 보냈다. 하지만 기록과 사진 등으로 한 다리 건너 전해들은 과거의 사실은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는 현재의 사실을 넘어설 수 없다. 그래서 김 감독이 한화 감독을 맡지 않았더라면 20대도 50대와 같은 평가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예나 지금이나 많은 스포츠 선수들은 인터뷰 때 “좋은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한다. 은퇴 시기가 다가오는 스타 선수들일수록 더욱 그렇다. 하지만 선수들에게 은퇴 결정은 어린 시절 운동을 시작하기로 결심하는 것 못지않게 힘들다. 선수들의 수명이 길어진 프로 스포츠 종목 선수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러다 보니 한때 많은 팬을 보유하고,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스타 선수일수록 은퇴시기를 놓고 소속 팀과 갈등을 겪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팀과 힘겨루기를 하느라 경기에도 나서지 못한 채 은퇴를 미루는 사이 스타 선수를 그저 그랬던 선수 중의 한 명으로 기억하는 팬들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김응용 감독처럼.

그런 면에서 메이저리그는 벤치마킹할 만한 좋은 전통을 만들어가고 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뛰어났던 마무리 투수로 꼽히는 마리아노 리베라는 2013년 시즌이 시작되기 전 “올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한다”고 선언했다. 당시 메이저리그 데뷔 19년 차로 44세의 나이였지만 리베라는 여전히 소속 팀 뉴욕 양키스의 주전 마무리 투수였다. 2013년 시즌 내내 양키스의 원정경기에는 대부분 만원 관중이 들어찼다. 리베라의 마지막 투구와 작별 인사를 직접 보기 위해 평소보다 많은 팬들이 경기장을 찾은 것이다. 2012년 애틀랜타의 치퍼 존스가 시작한 이른바 ‘은퇴 투어’는 리베라에 이어 2014년에는 양키스의 주장 데릭 지터가 이어받았다. 지터 역시 주전 유격수로 원정경기에 출전해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은 많은 관중에게 전성기 못지않은 기량으로 작별 인사를 대신했다. 리베라와 지터는 모두 특별한 대우를 받으며 이벤트식의 경기를 치르지 않았다. 당당히 실력으로 은퇴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경기에 출전했다. 최고의 전성기는 아니지만 적어도 기량이 내리막을 타기 전에 은퇴를 결심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리베라와 지터는 모든 선수들이 바라는 좋은 선수로 영원히 팬들의 기억에 남게 됐다.

국내 프로야구의 뜨거운 감자 중 하나도 스타 선수들의 은퇴 문제다. 국민타자로 불리는 슈퍼스타 이승엽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다고 당장 은퇴해야 할 정도로 이승엽의 기량이 떨어졌다는 것은 아니다. 올 시즌에도 이승엽은 충분히 제 몫을 하고 있다. 하지만 불혹을 넘긴 나이를 감안할 때 시간이 많이 남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 물론 은퇴 시기는 이승엽 스스로가 결정할 문제여서 언제가 될는지 모른다. 다만 리베라와 지터처럼 이승엽도 국민타자로 영원히 기억됐으면 좋겠다. 박수 받을 때 떠나는 명예로운 은퇴가 스포츠에서도 쉽지만은 않아서 더욱 그렇다.
 
이현두 스포츠부장 ruchi@donga.com
#김응용 감독#마리아노 리베라#스타 은퇴#이승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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