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호와 1루 번갈아 맡는 린드, 전권 가진 단장이 작년 직접 영입… 내년 FA 대비 상품성도 유지해야
둘 합친 성적 타율 0.271-홈런 18, 리그 최고수준… 린드 뺄 이유 없어
“나로 인해 한국인들이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메이저리그 시애틀 매리너스 스콧 서비스 감독은 12일 텍사스와의 경기에 앞서 고해성사 하듯 이렇게 말했다. 전날 경기에서 홈런을 2개나 친 이대호를 벤치에 앉히고, 부진한 애덤 린드를 선발로 기용한 데 따른 입장 표명이었다. 그는 두 명의 선수(이대호, 린드)를 한 포지션(1루)에 번갈아 기용하는 ‘플래툰 시스템’을 철저히 따르고 있다.
괜한 립서비스만 할 게 아니라 감독 권한으로 플래툰을 폐기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시애틀은 제리 디포토 단장이 진두지휘하는 팀이다. 그는 지난해 LA 에인절스 단장을 하다 마이크 소샤 감독과의 파워게임에서 밀려 시애틀로 옮겼다. 시애틀은 그에게 전권을 보장했다. 그는 에인절스 시절 부단장으로 함께 일했던 서비스를 시애틀 사령탑에 앉혔다. 이대호의 플래툰 기용은 디포토 단장의 구상이다.
디포토 단장으로서는 플래툰을 철회할 이유가 없다. 이대호와 린드의 협업으로 시애틀은 리그 최강의 1루를 구축하고 있다. 12일 기준으로 두 선수의 성적을 합산하면 타율 0.271에 홈런 18개다. 아메리칸리그에 이만한 1루수가 없다. 올해 연봉 2300만 달러(약 270억 원)로, 리그 최고의 1루수로 꼽히는 크리스 데이비스(볼티모어)가 타율 0.228에 홈런 15개다. 린드(800만 달러)와 이대호(보장액 100만 달러)의 몸값을 합해도 데이비스의 절반도 안 된다. 이만한 가성비가 없다.
수치로 환산되지 않는 이유들도 플래툰을 공고히 받치고 있다. 린드는 디포토 단장이 지난겨울 이적시장에서 직접 영입한 선수다. 800만 달러 선수 영입이 실패로 돌아가면 단장의 인사 고과에 반영된다. 게다가 린드는 올 시즌을 끝으로 자유계약선수(FA) 신분이 된다. 이런 선수를 홀대하면 다른 베테랑 선수들이 동요해 팀 분위기가 나빠진다. 또 트레이드 마감시한(7월 31일)이 임박하면 플레이오프 진출이 유력한 팀들은 좋은 타자를 찾으려고 혈안이 된다. 린드를 트레이드할 생각이 있다면, 그때까지는 상품성을 유지해 놔야 좋은 매물과 바꿀 수 있다.
이대호에게도 플래툰이 나쁜 카드는 아니다. 시카고 컵스, LA 다저스 등에서 플래툰을 경험했던 최희섭(야구 해설가)은 “번갈아 경기에 나서면 체력을 비축할 수 있고, 또 상대팀을 보다 정밀하게 분석할 수 있다”며 “여기에 경쟁심리 등이 더해져 타격 상승세가 더 오래간다”고 설명했다.
이대호 측은 “에이전트가 구단에 (출전과 관련해) 조금씩 얘기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야구 해설가 대니얼 김은 “괜한 분란만 만들 수 있다. 당초 원하던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시애틀 구단은 호텔에서 경기장까지 가는 버스를 2대 운영한다. 노장들이 이용하는 버스는 정규 훈련 시간에 딱 맞춰 움직이고, 젊은 선수들이 주로 타는 버스는 1, 2시간 일찍 출발한다. 이대호는 아직까지도 젊은 선수들과 함께 움직인다. 이런 초심이라면 견고한 플래툰도 서서히 빗장이 풀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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