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위표를 보면 낯설다. 우리 자리가 아닌 듯하다. 주변에선 뒷심 부족이니, 집중력이 떨어졌느니 하면서 수군거린다. 이런 순위가 처음인지라, 개인적으로 자존심도 상한다. 무엇보다 팬들에게 죄송하다.
수원삼성 주장 염기훈(33·사진)은 “요즘 참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수원은 2014년과 2015년 연속으로 K리그 클래식(1부리그) 준우승을 차지한 팀이다. 올해는 14라운드까지 9위. 받아들이기 힘든 성적표다. 우리 힘이, 실력이 이것밖에 안 된다면 오히려 마음이 편할 텐데 그것도 아니다. 후반 막판 골을 허용하면서 이길 경기를 비기고, 비길 경기를 내주는 일이 수차례 반복됐다. 결과가 안 좋으니 동료들도 자신감이 떨어진 것 같다. 경기 막판이 되면 스스로 불안하다고 느끼게 된다. 15일 전북현대전에서도 후반 추가시간에 결승골을 내주고 1-2로 무너졌다.
염기훈은 “(서정원) 감독님께선 싫은 소리 한 번 안 하신다. 오히려 너무 처져 있지 말자고, 용기를 내자고 하신다. 그래서 더 미안하고 죄송스럽다”고 했다. 그러면서 “왜 안 좋은 결과가 반복되는지 나도 이유를 모르겠다. 이상하게 꼬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답을 찾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넋을 놓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 그는 “우리가 한 발 더 뛰는 수밖에 없다. 이럴 때 우리끼리 더 뭉쳐야 이 위기를 이겨낼 수 있다며 후배들을 다독이고 있다”고 했다.
‘이런 페이스라면 상위 스플릿 진입이 쉽지 않아 보인다’라는 말에 그는 단호하게 “아니다”고 했다. “우리가 골을 못 넣고 지거나 비기는 게 아니다. 경기 내용만 놓고 보면 충분히 희망이 있다. 우리 팀의, 수원의 저력을 믿는다.”
염기훈은 전북과 울산현대를 거쳐 2010년 수원 유니폼을 입었다. 그 때만 해도 푸른 유니폼이 ‘운명’이 될지 몰랐다. ‘수원 맨’으로 맞은 첫 시즌, FA컵 결승전에서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왼발 슛으로 결승골을 뽑아 짜릿한 1-0 승리를 일궜다. 그런데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이후 한 번도 우승컵을 들어올리지 못했다. 이렇게 ‘무관’으로 오래 지내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모두 자신의 탓인 것처럼, 마음이 무겁고 가슴이 답답하다.
염기훈은 소속팀은 물론이고 타 팀 동료들과 선·후배들에게서 존경과 사랑을 받는다. 실력과 인성을 두루 갖춘 몇 안 되는 선수 중 한 명이다. 지난해 올스타 베스트 11 투표에선 클래식 12개 구단 감독·선수들의 ‘만장일치’로 왼쪽 미드필더에 선정되기도 했다.
염기훈에게는 바람이 하나 있다. 2006 년 전북 소속으로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했고, 2010 년 FA컵 왕좌에도 올라봤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 번도 정규리그 우승 트로피는 안아보지 못했다. 지난 2년간 준우승에 머물렀을 때 너무 안타까웠던 이유도 그래서다. 우승이란 두 글자를 생각하는 그에게 ‘9’란 숫자는 그래서 더 가슴 아프다. 그렇다고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 역경을 딛고 일어서겠다고 다짐하며 또 한 번 스파이크 끈을 고쳐 맨다. 수원은 18일 상암에서 FC서울과 시즌 2번째 슈퍼매치를 펼친다. 팀에도, 그에게도 터닝 포인트가 필요하다. 염기훈은 모처럼 미소를 지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