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전 참패후 인터뷰 거부하자 “팬에 대한 의무 저버렸다” 질책
기본과 원칙 중시하는 슈틸리케호, 그래서 1-6 대패에도 기대 못버려
‘무적함대’ 스페인에 당한 1-6 참패의 여운이 짙게 남아 있던 2일. 평가전 2차전을 위해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공항에서 체코행 비행기를 기다리던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일순 긴장에 휩싸였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사진)이 갑자기 선수들을 불러 모았기 때문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전날 경기 후 믹스트존(자유 인터뷰 구역)에서 인터뷰를 거부한 사람은 손을 들라’며 조사에 나섰다. 쭈뼛쭈뼛 손을 들었던 선수들은 슈틸리케 감독으로부터 호된 꾸지람을 들었다.
꾸지람의 요지는 이랬다. ‘성원해준 팬들은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궁금해할 것이다. 결과가 좋지 않을수록 더 적극적으로 상황을 설명하고 소통해야 한다.’ 한마디로 팬들에 대한 의무를 저버렸다는 것이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는 “믹스트존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고 감독이 선수들을 혼내는 건 이례적이다. 특히 개인의 자유의사를 존중하는 외국인 감독에겐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선수들에겐 믹스트존 인터뷰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 수십 년간 유럽 무대를 누벼 온 슈틸리케 감독이 모를 리 없다. 하지만 결과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선수들의 태도는 슈틸리케 감독을 참을 수 없게 했다. 기본을 중시하는 슈틸리케 감독의 철학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체코로 건너간 뒤 기자회견을 자청해 1시간 반 동안 쌓였던 말을 털어놨다. 선수들의 실력이나 정신력에 대한 비판은 없었다. 한국 축구 전반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을 뿐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 유럽 원정 소집 때 이청용(28·크리스털팰리스)과 박주호(29·도르트문트), 김진수(24·호펜하임) 등 핵심 유럽파를 제외했다. 소속팀 경기에 제대로 출전하지 못하는 선수들은 뽑지 않겠다는 원칙을 지킨 것이다. 당연한 내용이지만 잘 지켜지지 않았던 이 원칙은 이제 슈틸리케호의 기본이 됐다.
그 대신 K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는 선수들의 발탁은 늘어났다. K리그 경기장을 꾸준히 찾겠다는 슈틸리케 감독의 약속이 잘 지켜지고 있기 때문이다.
부임 초기, 슈틸리케 감독이 K리그 챌린지(2부) 안산 경기장을 찾았을 때 일이다. 당시 함께 갔던 축구협회 관계자는 “대표급 선수들이 없어 이용래(30·수원) 등 예전에 국가대표였던 선수들을 지목해 소개했더니 앞으로 그러지 말라는 핀잔을 들었다. 백지 상태에서 선수들을 골고루 보고 싶다는 뜻이었다”고 말했다.
축구계는 한때 대표팀 감독의 권위를 무시하고, 보이지 않는 파벌을 조성해 위기를 겪었다. 원칙이 존중되면 생겨나지 않았을 문제들이었다. 대표팀의 16경기 연속 무패 기록은 깨졌고, 세계 수준과의 격차는 뼈저릴 만큼 확연히 드러났다. 하지만 아직 슈틸리케호에 대한 기대감은 크다. 기본이 지켜지는 팀의 발전 여력은 충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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