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바지의 마법’ 또 통했다…김세영, 마이어 클래식 연장 끝 우승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20일 15시 56분


김세영(23·미래에셋)은 마지막 날이면 늘 빨간색 바지를 입는다. 그가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서 거둔 5번의 우승은 모두 역전승이었다. ‘역전의 여왕’이라는 별명은 ‘빨간 바지의 마법’에서 비롯됐다는 얘기가 나왔다. 지난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 진출한 뒤 ‘빨간 바지’는 연장전마다 승리를 부르는 부적으로 업그레이드됐다.

김세영은 20일 미국 미시간 주 그랜드래피즈 블라이더필드CC(파71)에서 열린 LPGA투어 마이어 클래식에서 최종 합계 17언더파로 카를로타 시간다(스페인)와 동타를 이룬 뒤 연장전에서 이겼다. LPGA투어 시즌 2승이자 통산 5승을 거둔 김세영은 빨간 바지를 입고 치른 연장전에서 3전 전승을 올렸다. LPGA투어에서 6차례 연장전을 모두 이긴 박세리의 뒤를 잇는 강심장이라는 평가다. 김세영의 KLPGA투어 통산 연장 전적은 2승 1패.

시상식을 마친 뒤 댈러스 집으로 이동한 김세영은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의 권유로 빨간 바지를 입었다. 원래 빨간색을 좋아했기 때문에 편한 느낌과 행운을 준다”며 웃었다. 아버지 김정일 씨는 “세영이의 불같은 성격을 누르는데 빨간색이 도움이 된다는 조언을 지인에게 들었다”고 설명했다.

이번 대회에서 김세영은 항상 자신과 동행하고 있는 아버지와 보기 없는 플레이를 약속했다. 최근 무리한 공략으로 타수를 잃어 우승 기회를 날렸기 때문이었다. 1라운드에서 보기 2개를 한 그는 2라운드에서도 13번 홀까지 보기 2개를 추가해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이후 4라운드 17번 홀까지 40홀 연속 보기없는 플레이를 펼쳐 단독 선두를 질주했다.

파만 해도 우승인 18번 홀(파4)에서 그는 드라이버 티샷을 러프에 빠뜨리며 보기를 해 먼저 경기를 마친 시간다에 동타를 허용했다. 억울했을 만 한데도 김세영은 마치 우승이라도 한 듯 주먹을 불끈 쥐는 등 세리머니까지 했다. 이에 대해 김세영은 “경기 도중 리더보드를 쳐다보지 않아 다른 선수 상황은 몰랐다. 선두였던 전인지와 2타차여서 보기에도 내가 우승한 줄 알았다. 스코어카드를 제출하고 시상식 하는 줄 알았는데 티박스로 가자고 해서 그때서야 연장전인줄 알게 됐다”고 말했다.

18번 홀에서 열린 연장전에서 김세영은 깊은 러프에서 한 두 번째 샷으로 볼을 그린 앞에 떨어뜨려 20m 가까이 굴러가게 한 뒤 컵 90cm에 바짝 붙은 볼을 버디로 연결했다. 반면 시간다는 빨간 바지의 공포에 시달린 듯 실수를 반복하며 보기에 그쳤다.

전인지의 축하 샴페인 세례를 받은 김세영은 “오늘이 미국에선 아버지의 날인데 트로피를 선물로 드리게 돼 더욱 기쁘다”고 말했다. 김세영은 태권도 관장 출신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 태권도(공인 3단)를 배우며 담력을 키웠다. 김세영의 장타 비결로는 태권도 격파의 원리가 골프 임팩트와 비슷한 점도 꼽힌다. 아버지 김 씨는 “긴장하면 근육이 위축돼 실수가 나오는데 세영이는 어려울수록 베스트 샷이 나왔다. 평소 잠들기 전에 연장전, 1타차 상황 등을 머릿속에 그리는 이미지트레이닝을 자주 한다. 딸이 잘해 박수도 받고 너무 자랑스럽다”고 기뻐했다.

김세영이 정상에 오르면서 최근 5개 대회 연속 무관에 그쳤던 한국인 선수들의 우승 갈증도 풀렸다. 세계 랭킹 5위 김세영은 8월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출전을 향한 안정권에 접어들었다. 전인지는 3위(15언더파)로 마쳤다. 세계 1위 리디아 고는 공동 4위.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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