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365일 가운데 360일은 혹독한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일류 프로야구 선수가 되리라 확신합니다.” 메이저리그 안타왕 피트 로즈의 기록을 넘어서며 세계 안타왕(비공인)에 오른 스즈키 이치로(마이애미)가 14세 때 일기장에 적은 글이다.
꿈은 확실히 힘을 가졌다. 야구 코치였던 아버지를 통해 꿈을 꾸기 시작한 이치로는 1992년 일본 오릭스에 입단해 프로야구 선수가 됐다. 현실은 물론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다. 이치로는 2년간 주로 2군에 머물며 실의에 빠졌다. 코칭스태프가 그의 변칙적인 타격 폼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1994년 오기 아키라 감독을 만나면서 반전이 시작됐다. 그해 타율 0.385에, 일본 프로야구 한 시즌 최다인 210안타를 쳐 퍼시픽리그 최우수선수(MVP)에 올랐다. 일류 프로야구 선수가 됐다.
그런 이치로가 꿈을 더 크게 확장하게 된 건 또 다른 인연 덕이었다. 장훈(76)과의 만남은 그의 야구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재일동포 장훈은 무수한 차별을 이겨내고 대단한 열정으로 일본 프로야구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전설. 프로 20년간 통산 최다 안타(3085개) 기록을 썼고, 타격왕에도 7번이나 올랐다. 그런 전설이 이제 갓 떠오른 신인급 선수에게 “나의 3000안타와 7번의 타격왕 기록을 갈아 치울 수 있는 선수는 너밖에 없다”고 칭찬한 것이다.
대선배의 찬사에 한껏 고무된 이치로는 그의 말을 인생 목표로 삼았다. 일본에서 7년 연속 타격왕과 1278개의 안타를 기록한 뒤 미국 진출 7년 만인 2008년 개인 통산 3000안타를 기록했다. 이치로는 “3000번째 안타를 기록한 순간 하리모토(장훈) 선배의 얼굴이 떠올랐다”며 감격을 토해냈다.
장훈과 이치로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치로는 이듬해 2009년 3086안타로 결국 장훈을 넘어섰다. 장훈은 그 현장에 있었다. 장훈은 “내 기록이 깨진 건 아무래도 아쉽다”고 솔직하게 속내를 밝힌 뒤 이치로에게는 “이제는 피트 로즈를 향해 뛰어주길 바란다”고 더 높은 목표를 제시했다.
‘이치로라면 할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이치로도 가볍게 듣지 않았다. 3000안타 이후 갑작스러운 부진에 좌절하던 2012년 스프링캠프 때 장훈의 사진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나와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그 힘으로 일본 구단의 러브콜을 이겨내며 빅리그에서 꿋꿋이 나아갔다. 이치로가 결국 피트 로즈를 넘어서자 장훈은 “100년 안에 다시 나오기 힘든 선수”라며 마지막 극찬을 전했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의 감격이었다.
장훈이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서 큰 목표를 그려왔던 이치로는 또 다른 여정을 준비하고 있다. 그의 등번호는 51번. 51세까지 현역 생활을 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이치로는 15년의 미국 생활 동안 몸무게가 단 1파운드(454g) 늘었을 뿐이다. 장훈이라는 거인을 통해 이치로라는 더 큰 거인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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