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권 바로 아래 자리한 섬나라 아이슬란드는 영국과 3차례의 ‘대구 전쟁’을 치렀다. 영해와 생선 어획권을 둘러싼 해상 마찰인데, 그 와중에 영국 어부와 아이슬란드 해양경비대 기술자 각 1명이 희생됐다. 어쨌거나 이 나라 국민들은 ‘영국 해군의 침략을 물리친 유일한 국가’란 자부심을 갖고 있다.
▷화산과 빙하가 공존하는 아이슬란드는 ‘불과 얼음의 땅’으로 불린다. 여름엔 백야가, 겨울엔 오로라가 유명한 33만 인구의 소국이 영국에 또 한 번 패배를 안겼다. 28일 프랑스 니스에서 열린 2016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16)의 16강 경기에서 축구 종주국에 2-1 역전승을 거뒀다. 유럽 축구의 ‘변방 중의 변방’이 세계 최고 프리미어리그 출신 선수들로 구성된 잉글랜드 팀을 침몰시킨 것이다. 날씨 탓에 1년 중 석 달만 밖에서 공을 찰 수 있고 프로팀이 없어 전원 해외파로 구성된 아이슬란드 대표팀의 몸값을 합치면 993억 원. 잉글랜드 팀(9750억 원)의 10% 정도다. 이번 승리가 ‘세계 축구 10대 이변’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수도 레이캬비크의 도심에 운집한 국민은 8강 진출에 열광했다. 새로 당선된 대통령 귀드니 요한네손은 말했다. “아마도 대구 전쟁을 제외한다면 아이슬란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승리다.” 영국의 상심은 컸다. BBC의 진행자는 “역대 최악의 굴욕적 패배다. 축구선수보다 화산이 더 많은 아이슬란드에…”라고 탄식했다.
▷아이슬란드 축구의 마법은 팀워크와 정신력 덕분에 가능했다. 그 중심에 아이슬란드 출신 감독과 더불어 유로 본선 첫 출전과 8강 진출 쾌거를 이끈 스웨덴 국적 라르스 라예르베크 감독이 있다. 예선 전승으로 유로의 첫 우승까지 노렸던 영국의 부진은 선수들보다 경기 직후 물러난 로이 호지슨 감독에게 화살이 돌아갔다. 선수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능력을 극대화하는 것이 사령탑의 몫인데, 감독이 자기 철학과 전술만 고집하다 굴욕을 자초했다는 얘기다. ‘브렉시트’ 후폭풍에 휘청거리는 영국, 정치나 스포츠나 리더십 위기에 발목 잡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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