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베이스볼] 끝장맨 문규현 “성이<아들 문성>가 복덩인가봐요”

  • 스포츠동아
  • 입력 2016년 7월 5일 05시 45분


15년 동안 뒤에서 묵묵히 동료들을 빛나게 했던 그가 드라마의 주인공이 됐다. 롯데 문규현은 지난달 28일과 29일, 홈에서 열린 삼성전에서 끝내기 홈런과 끝내기 안타를 이틀 연속 때려내며 대역전극을 일궈냈다. 28일 끝내기 3점포 이후 환호하는 문규현. 스포츠동아DB
15년 동안 뒤에서 묵묵히 동료들을 빛나게 했던 그가 드라마의 주인공이 됐다. 롯데 문규현은 지난달 28일과 29일, 홈에서 열린 삼성전에서 끝내기 홈런과 끝내기 안타를 이틀 연속 때려내며 대역전극을 일궈냈다. 28일 끝내기 3점포 이후 환호하는 문규현. 스포츠동아DB
조연으로 15년을 이겨낸 야구인생
2연속 끝내기…나에게도 이런날이
태어나서 가장 많이 축하 받았어요
난 평범한 선수…묵묵히 기본 지킬 것


2002년 8개 구단의 지명을 받은 신인 104명 중 86순위. 입단 직후 개명. 백업 인생 8년에 이은 9번타자 유격수. 그리고 KBO리그 최초 2경기 연속 끝내기에 이르기까지. 한번도 스타플레이어라는 수식어를 받은 적은 없지만, 늘 한자리를 지키며 묵묵히 제몫을 다하는 선수가 있다.

롯데 문규현(33). 그는 ‘평범함’을 무기로 한 팀에서만 15년을 뛰며 프로선수로서 때늦은 전성기를 꿈꾸고 있다. 어느덧 나이는 30대 중반을 향함에도 그의 얼굴에 어느 때보다 밝았다. 홈에서 삼성을 상대로 이틀 연속 끝내기를 때려낸 문규현을 2일 비가 내리는 사직구장에서 만났다.

“2연속 끝내기? 태어나서 가장 많이 축하받아”

-역대 최초 2경기 연속 끝내기의 주인공이 됐다.

“첫째 날(6월28일)에 이어 이튿날(6월29일)에도 나에게까지 기회가 올 줄 몰랐다. 앞의 타자들이 연결을 잘 해줬다. 코치님들이 준비하라고 말씀하셔서 그때 마음을 다잡았다. 끝내기 욕심보다는 내가 살아나가야 뒤에 손아섭까지 연결된다는 생각으로 타석에 섰다.”

-축하도 많이 받았을 것 같다.

“프로에 와서 가장 많은 축하를 받았다. 2년 전 끝내기 홈런(9월14일 두산전)을 쳤을 때보다도 더 많이 받았다. 특히 부모님께서 정말 기뻐해주셨다. 팀이 시즌 중반으로 넘어오면서 힘든 부분이 많았는데 연승을 하며 반등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아 더욱 기분이 좋다.”

-6월30일 황재균도 끝내기 홈런을 친 뒤 함께 포옹하는 사진이 인상적이었다.

“끝내기 세레머니를 하고 관중석을 향해 인사하는 순간에 우연히 (황)재균이가 내 옆에 있더라. 좀 진하게 포옹했다(웃음). 경기 끝나고 나서는 재균이에게 ‘고맙다’고 문자를 보냈더니 재균이가 ‘1·2차전 MVP께서 왜 그러시냐’며 답장이 왔더라. 아무튼 후배가 끝내기 승리를 연결해줘서 고마웠다.”

“15년 뛴 롯데는 ‘중독’ 같은 팀”

-프로 지명을 받은 지 벌써 15년이 넘었다. 당시 기억은 어떤가.

“군산에서 초·중·고를 모두 나왔다. 부산에서 프로 생활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처음에 롯데 지명 소식을 듣고 황당하더라. 앞으로가 막막하기도 했다. 다행히 같이 입단한 이명우(롯데), 신종길(KIA) 두 친구 덕에 적응이 어렵지는 않았다.”

-셋이 함께 지낸 시간이 많았나보다.

“(신)종길이는 나처럼 고향이 전라도(광주)다. 그래서 처음에 의지가 많이 됐다. (이)명우는 사실은 1년 유급을 해서 우리보다는 1살 형인데, 처음에 말을 놓아서 아직도 친구로 지낸다. 명우는 고향이 부산이라 우리들에게 이것저것 도움을 많이 줬다.”

-입단 당시엔 어떤 선수였나.

“나는 사실 고등학교 때까지 투수로 뛰었다. 롯데도 처음엔 나를 투수로 생각해서 지명했다. 그런데 입단 후에 나에게 피칭은 전혀 안 시키고, 바로 방망이를 잡으라고 하더라. 학생 때 투수하면서 타자도 하긴 했지만, 처음엔 도무지 적응이 안됐다.”

-타자 전업은 어떻게 진행됐나.

“지금 두산 퓨처스 감독을 맡고 계신 공필성 당시 코치님이 내 은사이시다. 항상 나에게 수비를 잘한다고 칭찬해주시면서 나를 깨우쳐주셨다. 정말 많이 배웠다. 물론 처음 2∼3년은 힘들었다. 어마어마한 선수들이 많으니 ‘아,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라는 생각이 강했다. 그래도 수비 하나 믿고 여기까지 왔다.”

-입단 직후엔 타자 전향만이 아니라 이름을 바꾸기도 했더라.

“내 원래 이름이 ‘문재화’였다. 그래서 학교 다닐 때 친구들한테 놀림을 많이 받았다. 문재화를 잘못 발음하면 ‘문제아’가 되지 않나. 부모님께서도 내가 이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사실을 아셨다. 그래서 프로에 들어가자마자 이름을 바꿨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어느덧 한 팀에서 15년을 뛴 선수가 됐다.

“2000년대 중반 즈음, 방출을 당할 거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군대(2006년 상무 제대)는 일찍 갔다 왔는데 프로 생활이 순탄치 않았다. 뒤돌아보면 1군에서 뛴 햇수도 얼마 되지 않았다. 다행히 구단에서 숨은 가치를 인정해줘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15년을 함께 한 롯데는 본인에게 어떤 팀인가.

“꼴찌도 해보고 플레이오프도 가봤지만 잘할 땐 무시무시한 팀이고, 못할 땐 소심한 팀이 된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중독’ 같은 팀이다. 올해엔 끈기 있는 팀이 되려고 모두 노력하고 있다.”

-올 시즌을 앞두고 조원우 감독이 새로 부임했다.

“리더십이 강한 분이다. 현역 시절만큼이나 근성 있는 야구를 추구하신다. 특히 기싸움에서 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다. 경기 전엔 잘 챙겨 주시다가도 게임에 들어가면 카리스마 있는 모습으로 변하는 게 느껴진다.”

-부산에서 지내온 기간만큼 이제는 부산 사람이라고 해도 될 듯하다.

“내가 지금 서른넷 살이다. 인생의 반을 여기서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는 다른 지역에 가고 싶지도 않다. 부산이 더 편하다. 부모님은 아직 고향인 군산에 계신다. 고향 생각보단 부모님 생각만 떠오른다. 특히 아버님한테는 나밖에 없다. 정말 내 뒷바라지를 누구보다 열과 성을 다해 챙겨주셨다. 내가 더 잘 돼서 효도해야하는 마음뿐이다.”
롯데 문규현. 스포츠동아DB
롯데 문규현. 스포츠동아DB


2009년, 방출 위기를 딛고 일어서다

-문규현이란 이름을 알린 건 2000년대 후반부터였다.

“2009년이었다. 당시에 1군 등록은 안 되고 1군 합류만 10번 가까이 됐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1군을 올라오라고 하면서 등록은 안 시켜줄까. 내가 부족한건가’. 그래서 더 오기가 생겨 이를 악물었다.”

-방금 전 언급한 방출 위기를 잘 넘긴 것인가.

“그런 느낌이 있다. 1군 콜업은 안 되고 2군에 계속 머무는데 2군 성적도 좋지 않았다. 그러면 팀에서 쫓겨날 것 같은 느낌이 온다. 나는 방금 얘기한 1군과 2군을 오간 2009년 직전인 2008년 즈음에 위기가 있었다. 다행히 그때 위기를 잘 넘기고 2010년부터 1군 경기(80게임)에 많이 나설 수 있게 됐다. 생각해보면 2009년이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다.”

-시즌 초엔 백업으로 밀려났다가 주전을 되찾았다.

“내가 감독·코치님을 잘 만났다. 초반에 경기에 못 나갔지만 1대1 면담을 자주 하면서 ‘후반에 준비 잘해라’라는 조언을 들었다. 몸 관리도 꾸준히 하면서 좌절하지 않고 기회를 기다렸다. 또 얼마 전에 아들이 태어났다. 주위에서 아들이 복덩이라고 기분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신다. 정말 맞는 말이다. 내가 지금 야구를 더 잘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5월20일에 태어났는데 이름은 ‘문성’이다.”

-본인은 자신을 어떤 선수로 평가하는가.

“난 타격을 잘 하거나 수비가 월등히 뛰어난 선수는 아니다. 남들보다 조금 평범한 위치에 있는 선수였고, 지금도 그렇다. 대신 묵묵히 내 기본을 지키려고 했다. 영화로 치면 조연에 해당하는 선수라고나 할까. 그렇게 15년을 버텼다.”

-본인과 같은 스타일의 후배 또는 꿈나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 빨리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 맞춰서 준비를 해야 한다. 과거에도 느꼈고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프로는 만만한 곳이 아니다.”

롯데 문규현?

▲생년월일=1983년7월5일
▲출신교=군산초∼군산남중∼군산상고
▲키·몸무게=184cm·85kg
▲프로입단=2002년 롯데 입단(2002년 신인드래프트 2차 10라운드 전체 78순위)
▲프로 경력=롯데(2002)∼상무(2005∼2006)∼롯데(2007∼)
▲2016년 연봉=9000만원
▲2016시즌 성적=62경기 타율 0.313(176타수 55안타) 3홈런 31타점

사직 | 고봉준 기자 shuto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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