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부 회식 때면 ‘삼바의 여인’(설운도 노래)을 불렀다. 숟가락 꽂은 빈 병을 마이크 삼아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감독과 동료들을 즐겁게 하기에 충분했다. 활달한 성격에 화려한 쇼맨십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삼바의 여인을 즐겨 부르던 여중생은 이제 ‘삼바의 본고장’ 브라질에서 열리는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한다. 40년 만에 올림픽 메달을 노리는 여자배구 대표팀의 주장 김연경(28)이다.
세계적인 배구 스타로 성장한 그에게 원곡중 시절 자신을 가르친 김동열 감독(56·현 원곡고 감독)은 잊지 못할 스승이다. 2006년 프로배구 여자부 신인상과 최우수선수(MVP)상을 동시에 석권할 때도 김연경은 스승의 이름을 빼놓지 않았다. 김 감독에게도 김연경은 언제나 미소를 짓게 만드는 제자다. 원곡고 코트에서 만난 김 감독은 “연경이는 자랑스러운 제자”라고 말했다. ○ 기본기 다지며 세계적 선수 꿈 키워
사제의 첫 만남은 김연경이 초등학생이었을 때다. 김 감독은 당시를 또렷이 기억했다.
“배구를 하는 큰언니를 따라 초등학생 때부터 원곡중 체육관을 들락날락했다. 그때부터 자기도 원곡중에서 배구를 하겠다며 의욕을 보였다.”
한국을 대표하는 공격수가 된 지 오래지만 중학생 때만 해도 학교 주전 자리를 꿰차기가 쉽지 않았다. 김 감독은 “그때는 키가 160cm도 되지 않은 데다 또래 중 잘하는 선수가 많아 연경이가 눈에 띄지 않았다. 하지만 손발이 워낙 커서 나중에 키가 클 것이라는 확신은 있었다”며 웃었다.
주전이 되기에 부족했던 김연경에게 김 감독이 강조했던 것은 기본기였다. 안산서초 시절 세터를 주로 했던 김연경은 중학교에 입학한 뒤 리시브와 수비는 물론이고 왼쪽 공격수, 오른쪽 공격수 등 다양한 자리를 번갈아가며 착실하게 기본기를 다졌다. 김 감독은 “타 지역으로 훈련을 가면 다른 학교 감독들이 기본기가 좋은 김연경을 눈여겨보고 ‘여기에 두고 가라’고 할 정도였다. 그래서 반드시 대성할 거라는 믿음이 더 강해졌다”고 회상했다. 김연경도 “중학교 때 선생님 덕분에 수비 실력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고교 진학 후 키가 갑자기 크면서 국내 선수로는 드물게 192cm의 장신 공격수가 된 김연경은 키 큰 선수들이 상대적으로 약한 리시브에서 안정적인 기량을 뽐내며 세계적인 선수가 될 수 있었다.
○ 승부욕도 배려심도 많았던 제자
김 감독은 김연경이 보여준 ‘선수로서의 욕심’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연경이는 어려서부터 하고 싶은 건 다 해야 했다. 훈련을 더 해야겠다 싶으면 집에 가서 엄마를 붙잡고서라도 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김 감독의 아내이자 당시 함께 김연경을 가르쳤던 홍성령 전 원곡중 코치(53)는 “힘이 부쳐도 항상 하려는 의지가 강했다. 누구보다 코트에 서 있는 것 자체를 즐겼던 아이”라고 말했다. 홍 전 코치는 “지금도 터키에서 뛰는 모습을 보면 중학생 때와 표정이 똑같다. 그게 해외 무대에서도 기죽지 않고 자신의 기량을 펼치는 원동력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짧은 머리의 중학생은 어느새 세계무대를 호령하는 스타가 됐지만 스승과 제자 사이는 달라진 게 없다. 김 감독은 “요새도 시즌이 끝나면 학교로 찾아와 개인훈련을 하곤 한다. 후배들에게도 좋은 본보기가 되기에 흐뭇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올 5월 일본에서 열린 올림픽 최종 예선이 끝난 뒤에도 김연경은 후배들을 위한 간식을 챙겨 체육관을 찾았다. 2013년 원곡고 배구부 창단 때는 지역 꿈나무들을 위해 후원금 1000만 원을 내놨다. 김연경은 “사비를 털어서 제자들에게 운동복과 좋은 음식을 챙겨 주신 따뜻한 감독님이 늘 감사했다”고 말했다.
○ 스승이자 부모의 마음으로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리우 올림픽을 앞두고 메달에 대한 간절함은 김 감독도 마찬가지다. 이번에 출전하는 대표팀 12명 중 3분의 1인 4명이 그의 제자이기 때문이다. 김연경을 비롯해 김 감독의 맏딸이자 센터인 김수지(29), 오른쪽 공격수 황연주(30), 센터 배유나(27)가 원곡중 출신이다. 스승이자 부모의 마음으로 올림픽을 지켜보게 된 김 감독은 “아내와 함께 리우에 가고 싶었지만 국내 대회 출전 등 일정이 여의치 않아 포기했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응원하지는 못하지만 김연경에 대한 기대감은 어느 때보다 크다. 김 감독은 “연경이의 전성기가 앞으로 2, 3년이라는 얘기가 있지만 내가 보기엔 5, 6년은 더 지금의 자리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제 기량만 발휘하면 올림픽 메달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대회 첫 상대인 일본에 대해서는 “4년 전 런던 올림픽 때 3, 4위 결정전에서 일본에 패해 메달을 놓친 아쉬움을 꼭 풀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터뷰 내내 제자에 대한 애정을 감추지 않았던 스승의 마지막 당부는 건강이었다.
“지구 반대편에서 하는 올림픽인 만큼 여러 변수가 있을 것이다. 남은 기간 제발 아프지 말고 무사히 대회를 마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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