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아누 호날두(31)는 벤치를 향해 교체해 달라는 손짓을 했다. 고통스러운 표정이었다. 곧이어 왼팔에 차고 있던 주장 완장을 그라운드에 내팽개쳤다. 이번에는 불만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그러고 호날두는 울면서 들것에 실려 나갔다. 시간은 전반 24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이미 전반 7분 디미트리 파예트(프랑스)와의 충돌로 왼쪽 무릎을 다쳐 절뚝거리면서 뛰던 호날두였다. 그는 더 이상 그라운드로 돌아오지 못했다.
호날두가 없는 포르투갈. 안방 팬의 응원을 등에 업은 프랑스. 두 팀이 맞붙은 2016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결승전 승부는 프랑스로 기운 듯했다. 하지만 선수 호날두가 빠진 포르투갈에는 코치 호날두와 예언자 호날두가 있었다.
벤치로 물러난 호날두는 코치로 변신했다. 페르난두 산투스 포르투갈 감독이 서 있던 테크니컬 지역까지 걸어 나와 그라운드 안의 동료들을 향해 소리치고 손짓했다. 국제축구연맹(FIFA) 경기 규칙상 테크니컬 지역 안에서는 동시에 두 사람이 지시를 내릴 수 없게 돼 있다. 하지만 이날 대기심은 테크니컬 지역 안으로 들어서는 호날두를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않았다. 포르투갈이 11일 프랑스 생드니에서 열린 유로 결승전에서 개최국 프랑스를 연장 승부 끝에 1-0으로 꺾고 ‘앙리 들로네(유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면서 메이저대회(대륙선수권, 월드컵) 첫 정상을 차지했다. 포르투갈은 1975년 이후 41년간 이어져 오던 프랑스전 10연패의 사슬도 끊었다.
호날두는 이날 1-0으로 앞서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던 연장 후반 13분에는 의욕이 앞선 나머지 디디에 데샹 프랑스 감독이 지키고 서 있던 프랑스의 테크니컬 지역 안까지 걸어 들어가기도 했다. 프랑스 팀 벤치 부근에서 부상 치료를 받고 있던 팀 동료 라파엘 게레이로에게 빨리 경기장 안으로 들어갈 것을 주문하기 위해서였다. 산투스 감독은 “호날두가 벤치를 지키면서도 놀라울 정도의 팀워크를 보여주는 등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호날두는 이날의 결승골 득점자를 알아맞히기도 했다. 호날두는 연장전 후반이 시작되기 전 에데르에게 다가가 “네가 결승골을 넣을 것”이라고 했다. 후반 34분에 교체 투입됐던 에데르는 연장 후반 4분 강한 오른발 슛으로 결승골을 터뜨려 호날두의 예언을 현실로 만들었다. 에데르는 “호날두의 말이 나에게 엄청난 에너지를 불어넣었다”고 말했다. 호날두는 자신의 예언에 대해 “축구를 오래 하다 보면 감이라는 게 있다. 에데르가 결승전에서 골을 넣을 것 같은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날 우승으로 메이저대회 7번째(월드컵 3번, 유로 4번) 도전에서 정상 등극의 기쁨을 누린 호날두는 지난달 남미축구선수권대회(코파아메리카)에서 준우승에 그친 라이벌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와 대조를 이뤘다.
울면서 들것에 실려 나갔던 호날두는 경기가 끝난 뒤 또 한 번 울었다. 호날두는 “유로 2004 준우승 이후 너무 오래 기다렸다. 오늘이 나의 축구인생 최고의 날”이라며 기쁨의 눈물을 보였다. 12년 전 당시 19세의 나이로 안방 포르투갈에서 열린 유로 2004 결승전에서 그리스에 패한 뒤 그라운드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던 호날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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