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두산에 깃든 ‘달라짐’엔 무엇이 있을까. 김현수(28·볼티모어)의 백업이던 박건우(26)의 약진 혹은 친정으로 돌아온 정재훈(36)의 부활? 선수단 내부의 변화도 물론 눈에 띄지만, 또 하나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두산 특유의 ‘세리머니’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지난 시즌까지 두산은 경기 중 여러 세리머니를 내보이며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중요한 홈런이나 안타, 도루가 나올 때마다 타자들은 그라운드 안에서 약속된 제스처를 취했다. 때론 주먹을 쥐고 자신의 머리를 2~3번 두드렸고, 한 손으로 권총 자세를 취한 뒤 덕아웃을 향해 무형의 총알을 날리기도 했다. 이 같은 동작에 팀 분위기가 달아오른 건 당연지사.
그러나 올해 두산의 과도한 세리머니는 사라졌다. 안타를 치고 누상에 나가도 선수들은 한손을 불끈 쥐는 제스처 정도로 기쁨을 대신했다. 혹시 지난해 한국시리즈 우승 이후 선수단 분위기에 변화가 생긴 것일까. 이에 대해 두산 주장 김재호(31)는 세리머니가 사라진 배경에 대해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그는 “사실 지난 시즌 중에 타 팀 선수들 사이에서 우리의 세리머니 이야기가 나왔다. 상대 투수를 자극할 수 있다는 점에서 조금 자제해줬으면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고 숨은 이유를 밝혔다. 김재호의 설명대로 과도한 세리머니는 상대를 자극할 수 있다. 그러나 선수단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세리머니를 쉽게 포기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타 구단에도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KBO리그에선 과도한 세리머니가 양 팀간 신경전으로 번진 경우가 종종 있었다. 지난해엔 롯데 최준석(33)이 홈런 직후 하늘을 향해 손을 뻗는 동작에 불만을 품고 LG 투수 루카스 하렐(31)이 따라해 논란이 일었다. 2012년 준플레이오프에선 두산의 세리머니를 롯데 선수들이 그대로 따라하면서 날카로운 신경전을 펼치기도 했다.
경기 도중 나오는 세리머니는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도 항상 논란거리였다. 대표적인 예가 류현진(29)이 활약했던 2013년의 LA 다저스. 당시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1위 다저스는 쌍안경 세리머니, 미키마우스 동작 등 경기 중 다양한 제스처로 논란을 일으켰다. 잘 나가는 팀 성적과도 연결됐던 다저스의 세리머니는 팬들에겐 즐거운 볼거리였지만, 상대팀으로선 쉽게 넘길 수 없는 ‘꼴불견’이었다. 결국 다저스는 그해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에서 맞붙은 세인트루이스와 세리머니 문제를 놓고 설전까지 벌였다.
올 시즌 새롭게 주장을 맡은 김재호는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선수들에게 더 이상 세리머리를 권유하지 않았다.
아울러 신임 주장의 성격도 이러한 변화에 투영됐다. 김재호에 앞서 주장을 맡았던 오재원(31)은 거리낌 없이 감정 표출을 즐기는 리더였다. 오재원은 자신이 직접 큰 액션을 취하며 팀 분위기를 끌어올리곤 했지만, 다소 내성적인 성격의 김재호는 상반된 방식으로 리더십을 발휘하는 모습이다. 주장의 성격에 따라 선수단을 이끄는 방식의 차이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두산의 세리머니는 볼 수 없는 것일까. 이에 대해 김재호는 “세리머니를 좋아하는 선수도 있지만, 또 이를 꺼려하는 선수도 분명 있다”며 앞으로도 세리머니를 염두에 두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