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그레 시절부터 응원해온 팀이라 애착이 매우 컸다. 연고지 팀에서 선수생활을 할 수 있어 행복했다.”
한화 구단은 29일 오후 고동진의 웨이버 공시 사실을 전했다. 고동진은 대전중리초~한밭중~대전고를 졸업하고 2004년 한화에 입단해 지난해까지 통산 820경기 타율 0.249(2296타수572안타), 21홈런, 201타점의 성적을 거뒀다. 2014년에는 팀의 주장을 맡아 선수들을 이끌기도 했다. 야구인생에서 한 번도 고향을 떠난 적이 없으니, 한화의 프랜차이즈라 불려도 이상할 게 없다.
그러나 흐르는 세월을 막지 못했고, 결국 방출의 아픔을 맛봤다. 고질적인 무릎 부상도 그의 발목을 잡았다. 2012시즌이 끝나고 수술을 받았으나, 떨어진 주력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지난해 8월19일 대전 NC전은 고동진이 한화 유니폼을 입고 뛴 마지막 1군경기가 됐다. 올해는 2군경기에도 출장하지 못했고, 이미 지난달부터 팀을 떠나있었다.
29일 오후 고동진과 연락이 닿았다. 예상과 달리 목소리는 그리 어둡지 않았다. 그러나 마음속의 아쉬움까지 숨기진 못했다. 그는 “한화에서 좋은 감독님들을 만나서 선수생활을 했다는 자체가 감사하다”면서도 “기량이 떨어져 떠밀리듯 선수생활을 끝내진 말자고 생각했다. 경쟁력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 그만두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고동진은 팀에 대한 애착이 무척 강한 선수였다. 어떤 상황이든 팀을 먼저 생각했다. 무릎 수술 후 재활 중에도 팀의 부진에 누구보다 안타까워했다. 개인성적보다는 팀 승리에 누구보다 기뻐했다. 고동진과 함께한 한화 구단관계자는 “누구보다 성실했던 선수고, 주장을 맡아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하기도 했다. 경기 외적으로도 팀에 큰 도움을 줬다”고 돌아봤다. 한화와 이별이 더욱 아쉬운 이유다. 고동진은 “한화의 전신인 빙그레 시절부터 응원해온 팀이다. 그만큼 팀에 대한 애착이 크다”며 “정말 좋아하는 고향 팀에서 선수생활을 했다는 자체로 행복하다. 구단에 감사드린다”고 했다.
한화에서 뛰며 가장 아쉬웠던 순간은 2006년 한국시리즈다. 고동진은 그해 KIA와 준플레이오프에서 3경기에서 타율 0.545(11타수6안타)를 기록하며 시리즈 MVP에 올랐다. 그러나 삼성과 한국시리즈 6경기에선 타율 0.192(26타수5안타)로 부진했다. 고향 팀 유니폼을 입고 우승반지를 껴보지 못했던 걸 무척 아쉬워했다. “2006년 한국시리즈에서 준우승을 했을 때가 가장 아쉬웠다. 그때 나는 3년차의 어린 선수였다. 선배님들이 은퇴하면서 ‘너희는 꼭 우승하라’고 말씀하셨는데, 꿈을 이루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고동진은 “불러주는 팀이 있겠냐”면서도 현역연장의 여지는 남겨뒀다. 그는 “만약 불러주는 팀이 있다면 생각해 볼 문제”라며 “선수로 은퇴해도 야구에 관련된 일을 할 것 같다. 지난해부터 2군에 오래 있었는데, 어린 선수들과 직접 부딪히며 느낀 게 많다. 지도자가 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도 배웠다. 배운 도둑질이 야구뿐인데, 다른 할 일이 있겠나. 일단 지금은 가족과 시간을 보내며 미래를 설계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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