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그는 ‘유럽의 화약고’라는 발칸 반도에서 힘겨운 유년기를 보냈다. 어린 조코비치로서는 영문도 알 수 없는 민족·종교 갈등으로 피비린내 나는 내전이 멈출 줄 모르던 시기였다.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의 작은 아파트에 살던 조코비치는 시도 때도 없이 반복되던 나토 공습의 공포를 견뎌야 했다. 후일 조코비치는 “폭격기가 저공비행을 하는 가운데 12세 생일 축하 노래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고 회고했다.
이런 그에게 테니스는 단순한 운동이 아닌 희망이었다. 시설이 부족해 물을 뺀 수영장에서 공을 칠 때도 있었지만 땀 흘리는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주니어 시절 유망주로 주목받은 조코비치는 풍족한 지원을 약속한 영국의 귀화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코비치는 “풍파를 겪으며 챔피언이 될 수 있었고, 조국을 향한 애틋한 마음도 커졌다. 내가 세르비아 사람이라는 게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남다른 인생의 여정을 걸어온 조코비치가 다음 달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은 당연한 결정이다. 조코비치는 세르비아라는 이름의 국가가 올림픽에 처음 등장했던 2008년 베이징 대회와 2012년 런던 대회에 이어 3회 연속 올림픽에 나선다.
조코비치는 남자 테니스 세계 랭킹 1위를 질주하며 올해 사상 처음으로 통산 상금만으로 1억 달러(약 1120억 원)를 돌파한 스포츠 부자다. 테니스와 곧잘 비교되는 골프는 남자 세계 랭킹 1∼4위 선수 전원이 지카 바이러스, 치안 불안 등을 이유로 리우 올림픽 불참을 선언한 것을 보면 조코비치의 올림픽 개근은 이례적이기까지 하다.
조코비치는 연초부터 “올 시즌 최대 목표는 올림픽 금메달”이라고 공언했다. 메이저 대회에서 한 번 실패하면 1년을 기다리면 되지만 올림픽은 4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남다른 의미를 제시하기도 했다. 테니스 스타로 더 이상 이룰 게 없어 보이는 조코비치는 아직 올림픽 시상대 꼭대기는 고사하고 결승까지 가본 일도 없다. 8년 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당시 세계 최강 라파엘 나달(스페인)에게 막혀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런던 올림픽 때는 개회식에서 세르비아 선수단 기수까지 맡았으나 준결승과 3, 4위전에서 잇따라 패해 4위에 머물렀다.
2전 3기를 꿈꾸는 조코비치가 리우에서 금메달을 차지하면 세르비아 남자 선수로는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된다. 세르비아 여자 선수로는 런던 올림픽 태권도에서 정상에 오른 밀리차 만디치가 있다. 또 앤드리 애거시(미국), 나달에 이어 ‘커리어 골든 슬램(시기와 관계없이 4대 메이저 대회와 올림픽 우승)’도 달성한다.
올 들어 메이저 대회에서 30연승을 질주하던 조코비치는 이달 초 윔블던 3회전에서 미국의 샘 퀘리에게 충격적인 완패를 당했다. 주위에서는 조코비치가 한동안 후유증을 겪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현재 올림픽 전초전으로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리고 있는 로저스컵에 출전한 조코비치는 29일 “윔블던 초반 탈락으로 오히려 쉴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벌었다. 올림픽 대비가 잘되고 있으며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조코비치의 최대 라이벌로는 런던 올림픽에 이어 대회 2연패를 노리는 세계 2위 앤디 머리(영국)가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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