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진혁(35)은 지난달 28일 인천국제공항에 갔다. 양궁 국가대표팀이 리우데자네이루로 출국하는 날이었다. 오진혁은 4년 전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 남자 양궁 사상 첫 개인전 금메달을 땄다. 하지만 리우 올림픽에는 나가지 못한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했기 때문이다. 공항에 간 건 리우로 떠나는 남자 대표팀 후배들을 배웅하기 위해서였다. 자신의 올림픽 2연패 꿈을 좌절시킨 후배들이다. 하지만 그동안 대표팀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형제처럼 지낸 동생들이기도 하다. 양궁은 남녀 국가대표가 각각 8명이지만 올림픽에는 남녀 3명씩만 나갈 수 있다.
오진혁은 딱 두 가지만 부탁했다.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자기보다 더 좋은 성적을 낸 후배들이라 기술적으로는 주문할 게 별로 없었다. “단체전에 모든 걸 쏟아 부으라고 했어요.” 한국 양궁은 리우에서 사상 첫 전 종목(남녀 단체전 및 개인전) 석권에 도전한다. 4개 종목 중 금메달이 가장 먼저 나오는 게 김우진(24), 구본찬(23), 이승윤(21)이 팀을 이뤄 나서는 남자 단체전이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죠. 그래야 전 종목 석권도 가능하고요. 단체전 성적이 뒤에 열리는 개인전 경기에 미치는 영향도 큽니다.”
오진혁은 “이번 올림픽 개인전에서 셋 중 누가 금메달을 따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남자 대표팀의 전력이 좋다. 그동안 쏘던 대로만 하면 충분히 금메달을 딸 수 있다”고 했다.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각각 1위와 2위를 한 김우진과 구본찬은 세계 랭킹도 각각 1, 2위다. 선발전 3위 이승윤의 세계 랭킹은 8위다. 2년마다 열리는 세계선수권에서 2011, 2015년 대회 우승자가 김우진, 2013년 우승자가 이승윤이다. “그 어렵다는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 2, 3위를 한 선수들입니다. 따로 설명이 필요 없는 후배들이죠.”
오진혁은 김우진을 2008년 전국체육대회에서 처음 봤다. 김우진이 고교 1학년 때다. “충북 옥천에 활을 기가 막히게 쏘는 꼬마가 하나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우진이가 중학생일 때까지는 대회에서 볼 일이 없다가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보게 된 거죠. 정말 활을 예쁘게 잘 쏘더라고요.” 오진혁은 김우진을 “10점이 필요할 때 10점을 쏴 줄 수 있는 선수”라고 했다. 기선 제압이 중요한 단체전에서 김우진이 1번 슈터로 나서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우진의 화살 한 발당 평균 점수는 9.5점이다. ‘빗맞아도 9점’이라는 말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오진혁은 최근 국제대회에서 꾸준한 성적을 내면서 랭킹을 끌어올린 소속 팀(현대제철) 후배 구본찬을 두고는 “물이 점점 오르는 상승세에서 올림픽을 맞았다”며 “훈련 때 농담과 우스개 동작으로 분위기를 띄우는 것도 본찬”이라고 말했다. 이승윤에 대해서는 “말수가 적은 성격처럼 언제나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강점”이라고 말했다. 담력과 침착함을 갖춘 이승윤은 단체전에서 경기를 매조지는 마지막 3번 슈터다.
오진혁이 후배들에게 부탁한 다른 하나는 “부담을 갖고 경기를 해 달라”는 것. “대개는 마음을 비우고 부담 없이 경기를 하라고 얘기하지만 양궁은 다르다고 봅니다.” 그동안 선배들이 쌓아놓은 한국 양궁의 위상을 마음에 담아 사명감을 갖고 경기에 나서 달라는 주문이라고 한다.
“경기를 편하게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큰 걱정 안 합니다.” 오진혁은 TV를 보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후배들을 응원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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