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기춘·김재범 그늘 속 만년 유망주 우여곡절 끝에 생애 첫 올림픽 출전 16강 패배 아쉽지만 후회없는 승부
유도 남자 81kg급의 국가대표 이승수(26·국군체육부대)는 그야말로 우여곡절 끝에 2016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 출전했다. 생애 첫 올림픽 무대였다. 10일(한국시간) 16강전에서 고배를 마셨지만, 그의 투혼은 박수를 받기에 충분했다.
사연이 많다. 이승수는 일찍부터 한국유도를 이끌어갈 유망주로 꼽혔지만, 2인자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2008년 73kg급 국가대표로 선발됐지만, 그해 베이징올림픽 1진 선발전에서 ‘유도 천재’ 왕기춘(양주시청)에게 밀렸다. 81kg급으로 한 체급을 올렸지만, 2012런던올림픽 때는 김재범(은퇴)의 벽에 가로막혔다. 그가 국가대표팀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스파링 파트너’가 전부였다. 이름 석자를 알릴 기회도 많지 않았다.
반전이 일어난 것은 올해 5월 11일 강원도 양구에서 열린 체급별유도선수권대회 때였다. 이 대회 전까지 국제유도연맹(IJF) 세계랭킹에선 왕기춘이 8위, 이승수가 20위였다. 둘 다 랭킹 22위까지 주어지는 올림픽 출전자격은 충족시켰다. 대한유도회는 이 대회에서 더 좋은 성적을 거둔 선수에게 리우올림픽 출전권을 주기로 했다. 이승수는 금메달을 획득했고, 왕기춘은 2회전에서 탈락한 뒤 패자부활 1차전에서도 패했다.
여전히 끝난 것이 아니었다. 5월 30일까지 세계랭킹을 유지해야 했다. 이승수가 이 사이에 열린 알마티그랑프리(5월 13∼15일)와 과달라하라월드마스터스(5월 27∼29일)에 출전하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자칫 남은 대회에서 다른 나라 선수들이 치고 올라와 이승수의 랭킹이 올림픽 출전 기준에 미달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었다. 이 경우 다시 왕기춘에게 출전권이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우려는 현실화되지 않았고, 이승수의 생애 첫 올림픽 출전이 확정됐다. “힘들게 나간 올림픽이다. 그 사이에서 견뎌준 게 정말 대견스럽고 고맙다.” 이승수의 어머니 서인선 씨의 회상이다.
이승수는 리우올림픽을 앞두고 “나는 조명을 받은 적이 없는 선수다. 그래도 되나 싶다”면서도 “왕기춘, 김재범 선배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선배들의 이름에 먹칠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금메달을 따내면 군인답게 거수경례 세리머니를 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출발은 매우 좋았다. 32강전에서 에오인 코글런(호주)을 팔가로누워꺾기 한판으로 무찔렀다. 16강전에선 세계랭킹 4위 이바일로 이바노프(불가리아)를 상대로 전광석화 같은 업어치기를 2차례 선보이며 간담을 서늘케 했다. 먼저 지도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종료 56초를 남기고 밭다리떨어뜨리기로 절반패를 당했지만, 한 점이라도 따내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인 이승수의 몸짓은 지켜보던 모든 이들을 감동시켰다. ‘후회 없이 살자’라는 그의 좌우명을 실천으로 옮긴 한판이었다.
서 씨는 “아들(이승수)이 알아서 잘해주니 조력자 역할만 해주면 된다”며 “유도를 좋아하고, 종목에 대한 자부심이 정말 강해 꼭 한 번 올림픽에 나가보고 싶어 했다. 32강전을 보니 몸 상태도 좋고 눈에 독기도 있어 느낌이 좋았다. 정말 잘했다. 아들이 대견스럽다. 응원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승수를 오랫동안 지켜본 한 유도인은 “워낙 의지가 강하고 노력도 많이 하는 선수다. 잘 싸웠다”고 격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