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성동기]올림픽 난민팀이 보여준 지구촌의 희망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11일 03시 00분


성동기 국제부 차장
성동기 국제부 차장
올림픽에는 항상 ‘뜨는 별’과 ‘지는 별’이 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는 샛별들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꾸려진 난민팀이 주인공이다.

시리아 남수단 콩고민주공화국 에티오피아 등 다양한 출신 10명으로 꾸려진 초미니팀이다. 출전 종목도 수영 육상 유도 3종목뿐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3월 난민팀 구성 계획을 세우고 훈련비 200만 달러를 책정했을 때만 해도 제대로 참가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상상할 수 없는 비극을 겪은 난민 선수들은 그 누구라도 각자의 재능과 강인한 정신을 발휘하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뚜껑을 열어 보니 급조된 이 팀의 인기는 기대를 넘어섰다. 5일(현지 시간) 개막식 때 오륜기를 앞세운 난민팀이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모두 기립박수를 보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개막식에 맞춰 난민팀에 격려 편지를 보냈다. “당신의 용기와 힘은 평화와 연대(solidarity)에 대한 간절한 요청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당신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교황의 격려에 힘을 얻은 시리아 출신 수영 선수 유스라 마르디니(18)는 6일 열린 여자 접영 100m 예선에서 조 1위로 터치패드를 찍었다.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기고도 미소를 잃지 않는 난민 소녀의 선전에 관중들은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예선 기록이 하위권에 속해 준결선에 진출하지 못했지만 “금메달보다 값진 성적” “꿈메달” 등의 찬사가 쏟아졌다.

2012년 월드챔피언십 수영대회에 시리아 대표로 출전했을 정도로 수영 실력이 뛰어난 마르디니는 난민 19명의 목숨을 구한 영웅이기도 하다. 지난해 8월 고향 다마스쿠스를 떠나 소형 보트를 타고 터키와 그리스 사이 에게 해를 건너다 침몰 위기를 겪었다. 정원이 6명인 작은 배에 20명이 탑승했던 것이다. 모터가 멈추고 배가 점점 뒤집어지려 하자 마르디니는 여동생, 그리고 다른 한 명과 함께 바다로 뛰어들어 3시간 반 사투 끝에 배를 그리스 해안까지 밀어냈다. 그는 악몽 같은 당시 상황을 묻는 외신 기자들의 질문에 “내가 바다에서 빠져죽었다면 정말 수치라고 생각했어요. 나는 수영 선수잖아요”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마르디니는 올림픽 스타 반열에 오르며 유명해졌지만 그의 고국 시리아는 아직도 내전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5년 동안 계속된 시리아 내전으로 480만 명이 시리아를 탈출했다. 시리아 난민들이 향하는 곳은 기회의 땅 유럽이다.

하지만 리우 올림픽에서 보여준 난민 선수에 대한 따뜻한 환영은 올림픽 바깥의 현실 세계에선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유럽의 여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지난해 유럽 난민 위기 당시 난민 수용에 앞장섰다가 지지율 하락으로 고전했다.

중동 난민들의 유입은 유럽의 정치 지형까지 바꿔 놓고 있다. 지난해 선거를 치른 덴마크 핀란드 스웨덴 프랑스 등에선 반(反)이민 정서에 힘입어 극우 정당들이 득세하는 결과가 나타났다. 많은 유권자들이 극우 정당에 표를 던지는 것은 그만큼 난민 유입을 우려하고 있다는 뜻이다.

마르디니는 올림픽을 앞두고 “난민이 나쁜 의미의 단어가 아님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올림픽 출전이라는 작은 꿈은 이뤘지만 난민에서 부정적 이미지를 떼 내고자 하는 그의 소망은 아직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올림픽에서 빛난 인류애가 경기장 밖으로도 퍼져 나간다면 이웃을 이해하고 세계가 한 지구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지 않을까.

성동기 국제부 차장 esprit@donga.com
#리우올림픽#난민팀#마르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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