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싱 국가대표 김정환(33·국민체육공단)은 마지막 올림픽 경기를 마친 뒤 하늘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한국 펜싱 역사상 처음으로 사브르 개인전에서 메달을 땄다고 아버지께 알려드리는 세리머니였다. 김정환의 아버지는 2009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10일(현지시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남자 사브르 개인전에서 동메달을 목에 건 김정환은 경기가 끝난 뒤 ‘지금 가장 생각나는 사람’을 묻는 질문에 “돌아가신 아버지”라고 답했다. 그는 “아버지는 정말 나를 위해서라면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주실 분이었다. 살아 계셨다면 지금 나보다 더 기뻐하셨을 것”이라며 “더 빨리 운동을 잘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올림픽 메달을 땄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서울 신동중 2학년 때 펜싱을 시작한 김정환은 한국체대 졸업반이던 2005년 처음으로 국가대표가 됐다. 그해 서울 국제 그랑프리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지만 도핑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해 1년 동안 선수 자격 정지를 당했다.
김정환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너무 심해 불면증에 시달렸다. 수면제를 잘못 먹은 게 탈이었다. 상심이 너무 커서 운동을 그만두려고 했는데 아버지가 붙잡아주셨다. 그 덕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정환은 아버지가 살아 계시던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는 출전권을 얻지 못했다. 4년 전 런던 올림픽 때는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개인전에서는 19위에 그쳤다. 김정환은 “런던 때 금메달만큼이나 오롯이 내 힘으로 얻은 이번 동메달도 소중하다”고 말했다.
올림픽 때는 순환 원칙에 따라 3개 펜싱 종목 중 2개 종목만 단체전이 열려 이번 대회에는 남자 사브르 단체전 경기가 없다. 김정환은 “현실적으로 다음 올림픽을 기대하는 건 무리다. 또 ‘가라, 마라’를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며 “다만 내가 대표팀을 하는 동안 한국 펜싱, 특히 사브르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이런 전통이 꾸준히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한국 여자 펜싱을 대표하던 ‘엄마 검객’ 남현희(35)도 이날 32강에서 패하며 마지막 올림픽 도전을 마쳤다. 남현희는 “그래도 속은 후련하다. 올림픽에 온 것만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며 “선수 생활 내내 나는 노력할 수밖에 없는 팔자를 타고났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이번 대회에는 행운이 좀 따라줬으면 했는데 잘 안 됐다”고 말했다. 리우데자네이루=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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