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승부조작 정국에 KBO는 없었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6년 8월 12일 05시 30분


사진제공|SK 와이번스
사진제공|SK 와이번스
야구판에서 “KBO 때문에”는 숱하게 듣지만, “KBO 덕분에”는 거의 들은 기억이 없다. 국내 프로스포츠기구 중 가장 유능하다는 평을 듣는 KBO로서는 억울할 법도 하다. 리그의 관리자인 KBO는 숙명적으로 ‘잘해야 본전’인 위치에 있다. 문제는 ‘그 유능한’ KBO의 위기관리능력이다. 비판을 감수하더라도 정도(正道)를 걷겠다가 아니라 어떡하면 욕을 안 먹고 당장을 모면할까에 KBO의 아까운 역량이 소진되는 것 같다. KBO의 철학부재가 빚은 보신주의가 결과적으론 KBO를 아무나 때려도 맞는 ‘동네북’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이래서는 리그의 원칙이 바로 설 리가 없다.

승부조작 사건의 와중에 KBO의 대처를 따라가면 당사자가 아니라 방관자 수준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사건이 터지자 KBO가 겨우 꺼내든 방안이 자진신고였다. 12일까지 자수하면 영구제명은 안 시킨다는 내용이었다. 자진신고 전부터 소문이 파다했던 유창식(KIA)을 제외하고 ‘당연히’ 1명도 없다. KBO 관계자도 11일 “지켜보겠지만 더 이상 자진신고자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승부조작이라는 최악의 행위를 저지른 선수에게 처벌을 감면해준다는 발상부터가 논란이다. KBO의 편의주의 탓에 불관용을 관용하는 상황이 빚어질 판이다.

아울러 KBO는 ‘2012년부터 올해까지 1950경기에서 의심스러운 1회 볼넷을 전부 조사하겠다’고 발표했다. 승부조작 패턴은 1회 볼넷 외에도 무궁무진하다는 것이 상식이다. 게다가 아무리 1회 볼넷을 들여다본들 승부조작의 증거라고 볼 여지는 없다.

KBO는 1950경기를 이미 다 조사한 상황이다. 어떻게 조사했는지는 공개하지 않아 알 길이 없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의심스러운 정황’이 포착된 투수의 소속팀에 자료를 건네줬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KBO가 공식 발표한 내용이다. 이에 대해 구단 관계자들은 “도대체 우리보고 어쩌라는 말인가?”라고 황당해한다. 이미 구단들은 나름 자체조사를 다 했다. 그런데 KBO가 직접증거와 무관한 1회 볼넷의 자료를 주고 ‘한번 조사해보라’고 한 것이다. 백번 양보해 조작을 했더라도 이 정도 자료를 들이댔다고 실토할 선수는 없다. 결국 ‘아무 것도 안 하느니 이거라도 했다고 KBO가 보여주고 싶어 했다’는 해석을 피할 길이 없다.

KBO의 심판 재조사 발표는 우왕좌왕 처신의 결정판이다. 3년 전, KBO는 문제 심판을 사실상 퇴출 조치시켰다. 문제를 인지하고 조치를 취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무슨 조사를 하겠다는 말인가? KBO 실무진조차 “(KBO가 검찰도 아닌데) 그 전직 심판원이 조사에 응하기나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KBO는 “심판들에게 주의를 환기하는 목적도 있다”고 말하지만 궁색하기 짝이 없다. 이 조사의 배경을 두고, 음험한 소문들이 퍼지는 현실을 KBO가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다. KBO의 권위는 실종됐고, 괴담만 양산되고 있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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