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이렇게 철저하게 열심히 운동한 적은 없었다. 그렇다고 늘 좋은 결과를 얻는 건 아니지만 잘 끝난 걸 보면 운도 따른 것 같다.”
박인비(28)는 올림픽 금메달의 원동력을 이렇게 말했다. 올해 초 허리 통증에 시달린 뒤 다시 왼손 검지까지 다친 박인비는 5월 이후 3개 대회에서 컷을 통과한 적이 없다. 5월 볼빅 챔피언십에서 84타를 치고 기권한 뒤 그는 골프를 고문에 비유하며 답답함을 털어놓기도 했다. 박인비를 담당했던 한 종합병원에서는 무리한 출전이 병을 키울 수 있다며 올림픽에 나가지 말고 3주 이상 깁스를 하라고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골프 인생의 기로에 설지도 모를 상황에서 오랜 고민에 빠졌던 박인비는 지난달 11일 “그동안 내가 골프로 쌓았던 것들을 모조리 잃을 수도 있지만 단 몇 %의 가능성만 있더라도 나서겠다”며 올림픽 출전을 결정했다. 그러나 이달 초 제주 삼다수 마스터스에서 56일 만의 복귀전을 치렀지만 예선 탈락했다. 그래도 박인비는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대회 2라운드 후반 9홀을 모처럼 1언더파로 마쳐 자신감을 얻었다.
박인비는 어떤 목표를 설정하면 집요하게 준비하는 스타일이다. 지난해 8월 커리어 그랜드슬램 여부가 걸려 있던 브리티시여자오픈에 대비하기 위해 연초부터 두꺼운 옷을 여러 벌 겹쳐 입고 공을 쳤다. 쌀쌀한 대회 장소에 적응하기 위해서였다. 당시에도 박인비는 허리 통증을 견뎌내며 대기록을 세웠다.
박인비는 리우 올림픽 대비를 위한 최적의 훈련장으로 인천의 잭니클라우스 골프클럽을 선정했다. 올림픽 골프장처럼 바닷가에 자리 잡고 있어 강한 바람에 대처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일주일에 3, 4차례 일반 내장객이 찾기 이전인 오전 6시에 남편이자 스윙코치인 남기협 씨(35)와 18홀 연습 라운드를 한 뒤 드라이빙 레인지에서 수백 개씩의 공을 치며 잃어버린 샷 감각을 찾는 데 집중했다.
올 들어 무뎌진 퍼팅을 고민스러워하던 박인비는 리우에서 전성기 때를 떠올리는 컴퓨터 퍼팅을 과시했다. 21일 마지막 라운드에서 그는 3번홀 2.7m, 4번홀 4.2m, 5번홀 7.5m 버디 퍼팅을 쏙쏙 넣으며 독주를 시작했다. 박인비와 같은 조였던 세계 1위 리디아 고와 저리나 필러(미국)는 줄줄이 무너졌다. 필러는 “인비에게 퍼팅 레슨을 받고 싶다”며 웃었다. 리디아 고는 박인비에게 5타 뒤진 은메달리스트가 됐고, 동메달은 박인비의 결혼식에 참석했던 펑산산(중국)에게 돌아갔다.
박인비는 강력한 경쟁자를 만나면 더욱 경기에 집중하는 스타일이다. 그는 “상대 선수가 긴장하는 걸 보면 나는 더 강해진다”고 말한다. 3라운드에서 박인비가 스테이시 루이스(미국), 마지막 날에는 리디아 고와 같은 조가 된 것도 이런 점에서 승부욕을 자극하는 요소가 됐다. 루이스와 리디아 고는 박인비와 치열한 라이벌 구도를 그렸던 상대였기 때문이다.
박인비는 남편 남기협 씨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4년 동안 무관에 허덕이던 박인비는 2012년 남 씨와 투어 생활을 동행한 뒤 재기에 성공했다. 올해 초 시아버지가 간암으로 갑자기 돌아가셔서 빈소를 지켰던 박인비는 “남편과 남편 선배(김응진 씨)의 도움으로 스윙을 교정한 효과를 봤다”며 고마워했다.
캐디 브래드 비처(34)는 올해로 10년째 박인비 곁을 지키며 메이저 대회 7승을 포함해 17승을 합작했다.
리우 올림픽 금메달은 비처에게도 또 다른 의미였다. 선수촌에서 생활을 한 그는 “메이저대회는 1년에 5번 열리고, 올해 우승을 못 해도 내년이 있다. 하지만 올림픽은 4년에 한 번이다. 평생 한 번뿐일지도 모르는 올림픽에서 딴 금메달이라니, 정말 환상적이다”라고 말했다. 비처는 또 “지난 한 달간 인비는 예전의 샷을 되찾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했다. 10년간 같이했지만 이렇게 열심히 하는 걸 본 건 처음이다”라고 말했다.
비처는 박인비의 멘털(정신력)을 최고 강점으로 꼽았다. 그는 “인비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엄청난 부담을 안고 치른 이번 올림픽에서 보여준 모습이 바로 그 증거”라고 했다.
올림픽 기간 동안 박인비는 선수촌이 아닌 별도의 숙소에 머물며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남기협 씨와 그의 소속인 갤럭시아SM 직원들은 끼니때마다 박인비가 즐기는 한식을 제공했다. 이번 쾌거로 은퇴설도 잠재우게 된 박인비는 대한골프협회의 금메달 포상금 3억 원을 받게 됐다.
한편 양희영은 펑산산에게 1타 뒤진 공동 4위에 올랐다. 전인지는 공동 13위, 김세영은 공동 25위로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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