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 타고투저 시대다. 이런 환경에서 성적을 내지 못하면 감독 자리를 보전하기 힘들다. 이 와중에 4위 SK부터 9위 삼성까지 5.5경기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팀들마다 30경기 이상씩 남겨두고 있어 이제부터 스퍼트를 내야 할 것 같은 타이밍이다. ‘무리를 해도 된다’는 암묵적 공감대 속에서 감독들은 믿는 투수를 연일 호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필 날씨는 기록적 폭염의 연속인지라 불펜투수들은 더욱 몸이 축날 형편이다. 어느덧 혹사와 승부수가 헷갈릴 지경까지 왔다. 3연투도 금기시하던 일반상식을 벗어나 이제 4연투가 빈번하고, 혹사의 원조 격인 한화에서는 5연투 투수마저 등장했다.
● 맞을 때까지 나간다?
롯데 최고참 우완 이정민(37)은 지난주 롯데가 치른 6경기 중 5경기에 투입됐다. 연패 탈출이 시급했던 18일 KIA전부터 21일 SK전까지 4경기는 전부 던졌다. 이정민은 이 4경기에서 1실점도 하지 않고 1세이브를 성공했다. 좌완 김유영(22)과 우완 윤길현(33)도 4연투, 3연투를 감당했다. KIA의 최고령투수(42) 최영필도 18~21일 4연전 중 3경기에 호출됐다. 40세 마무리 임창용도 11~14일 4연투에 이어 18일부터 4경기 중 3경기에서 던져야 했다. 8월 8경기 등판 중 임창용의 세이브는 3개뿐이다. KIA가 앞서지 않은 상황에서도 임창용이 던졌다는 얘기다. 35세 김광수도 21일까지 4연투를 했다. 박준표(24)는 12일부터 KIA가 치른 9경기 중 무려 8경기에 나갔다. 한화 심수창(35)은 13일 KIA전 선발 이후 17일 두산전부터 21일 kt전까지 5연투를 했다. 한화 최다이닝 투수 1,2위는 불펜인 송창식(96.1이닝)과 권혁(95.1이닝)이다.
● 감독들의 고충은 알겠지만…
넥센과 LG 정도를 제외하면 이제 불펜 혹사는 새삼스럽지도 않은 풍토가 됐다. 한 현역감독은 “타고투저가 심해지니까 포기할 경기가 없다. 지고 있어도 따라잡을 것 같으니까 필승조를 내고, 이기고 있어도 안심할 수 없으니까 믿는 투수를 찾는다”고 호소했다. 1승이 아쉬운 현실에서 불펜 필승조를 못 쓰고 나중에 후회하는 것보다 일단 쓰고 욕먹는 것이 낫다는 심리가 현장에 팽배하다. 이러다보니 선발이 못 던져서 불펜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선발은 분위기만 만들고, 불펜 계투책에서 승부를 보려는 야구까지 출현했다. ‘어떻게든 5위만 하면 면죄부를 얻는다’는 식의 승부욕 과잉 속에서 상식이 디딜 공간은 협소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