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기획] KBO는 왜 역대급 ‘타고투저’에 빠졌나?

  • 스포츠동아
  • 입력 2016년 8월 26일 05시 30분


KBO리그는 2014년 이후 타고투저 흐름이 지속되고 있다. 올해는 역대 최고였던 2014년과 비슷하다. 3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올린 LG의 에이스 우규민(사진)도 올해 5승9패 방어율 5.15에 그치고 있다. 스포츠동아DB
KBO리그는 2014년 이후 타고투저 흐름이 지속되고 있다. 올해는 역대 최고였던 2014년과 비슷하다. 3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올린 LG의 에이스 우규민(사진)도 올해 5승9패 방어율 5.15에 그치고 있다. 스포츠동아DB
# ‘3할’을 치면 스타플레이어였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3할 타자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2016년 8월24일 현재 KBO리그에서 규정타석을 채운 3할 타자는 총 37명이다. 팀당 라인업의 절반 가까이가 3할 타자이니, 3할을 못 치면 눈총을 받는 처지다.

# 점수차가 크게 앞선 팀이 도루를 감행하거나, 잦은 투수교체를 하는 건 야구에선 ‘불문율’로 터부시됐다. 그러나 이젠 모두가 불문율의 기준이 궁금하다. 7~8점차도 안심할 수 없는 게 현재의 야구다.

KBO리그는 역대급 ‘타고투저’의 광풍에 휘말려 있다. 투타 지표에 이상 징후가 나타난 건 2014년부터다. 당시 리그 타율은 최초로 2할8푼을 넘은 것도 모자라, 0.289를 기록했다. 2012년 0.258로 저점을 찍은 뒤, 2013년 0.268로 상승하더니 역대 최고점을 찍었다. 지난해에도 0.280으로 흐름은 계속 됐다. 방어율도 그 궤적을 함께 한다. 2012년 3.82로 투수가 강세를 보였으나, 2013년 4.32로 오르더니 2014년은 5.21로 역대 최초 5점대를 기록했다. 지난해에도 4.87로 흐름은 여전했다.


● 역대 최고 타고투저 2014년과 닮은 2016년

기록상 2014년은 최고의 타고투저 시즌이었다. 올해는 2014년을 떠올리게 한다. 그해 3할 타자는 역대 최다인 36명이었다. 지난해에는 28명으로 줄었다. 올 시즌은 24일 현재 37명이다. 리그 타율은 0.289, 방어율은 5.21로 2014년 수치와 똑같다. 프로 원년부터 현재까지 평균 타율은 0.265, 방어율은 4.14로 현 수치와 큰 차이를 보인다. 또 경기당 홈런은 2014년 2.02개로 2009년(2.17개) 이후 처음 2개를 넘었고, 지난해 2.10개, 올해 2.09개를 기록 중이다.
타고투저, 투고타저는 리그의 흐름을 나타낸다. 올해는 역대급 타고투저 시즌으로 꼽히는 1999년(타율 0.276·방어율 4.98)이나 스트라이크존 조정을 부른 2009년(타율 0.275·방어율 4.80)을 넘어선 지 오래다. 게다가 흐름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이미 KBO리그는 타고투저의 흐름에 지배됐다.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 매일 사각형 심판대에 오르는 심판들, 위축되는 S존

타고투저는 매우 복합적인 문제다. 현장에선 “투수가 살 길이 없다”고 푸념한다. 당장 좁아터진 스트라이크존에 불만이 많다.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들도 “던질 곳이 없다”는 말을 내뱉을 정도다.

스트라이크존은 나날이 높아져가는 KBO리그의 인기에 반비례해 위축되고 있다. 전 경기가 중계카메라를 통해 TV와 인터넷, 모바일로 소비되는 시대에 기술의 집약점인 ‘투구추적시스템(PTS)’이 심판들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중계화면을 통한 가상의 스트라이크존에서 벗어나는 공에 손을 올리면 심판은 실시간으로 비난의 중심에 놓인다.

이런 탓에 그들은 소극적이고 보수적인 스트라이크·볼 판정을 내린다. “3차원의 스트라이크존을 2차원적인 그래픽으로 표현하는 건 정확하지 않다”고 말하지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게 그들의 속내다. PTS는 3차원으로 발전했지만 모든 타자들에 대해 일원화시킬 수 없다.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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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자들의 발전 속도, 투수가 따라갈 수 없다

현실적으로 타자들의 발전을 투수들이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최근 국내 타자들은 적극적인 웨이트트레이닝으로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할 법한 근력을 길러냈다. 강정호를 시작으로 많은 KBO리그 출신 타자들이 빅리그 무대를 누비는 시대다.

단순히 근력만 증가한 게 아니다. 기술의 발전이 타자들을 돕고 있다. 타격을 하는 도구인 배
트의 반발력만 해도 과거와는 비교할 수준이 아니다. 외국인타자들로 인해 장타력에 최적화된 타격기법도 익숙해졌다.

방망이의 도움을 받고 몸집을 불린 타자들과 달리, 투수는 여전히 자신의 팔 하나만 믿고 공을 던진다. 상대적으로 타자들의 발전을 투수들이 따라갈 수 없는 환경이다. 몇몇 지도자들에게서 나오기 시작한 “타고투저 흐름이 한동안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말은 이제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 10구단 체제와 사라진 에이스들, 시간이 필요한 투수 저변

KBO리그 투수들의 수준도 이를 뒷받침한다. 대부분의 구단이 5명의 선발 로테이션도 제대로 갖추지 못해 시즌 내내 선발투수 고민을 한다. 이는 9구단, 10구단 체제로 성장한 KBO리그의 갑작스런 ‘양적 팽창’이 원인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선수층은 그대론데 구단 수만 늘었다”는 말은 더 이상 핑계로 들리지 않는다. 투수들이 타자들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시점에 KBO리그의 외연확대는 이를 더욱 가속화시켰다.
실제로 2000년대 후반 윤석민(30) 류현진(29) 김광현(28) 양현종(28)을 끝으로 더 이상 대한민국을 대표할만한 에이스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상당수 팀이 겪는 ‘토종 에이스 부재’는 한국야구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단시간에 해결될 일도 아니다. 성적을 위해 유망주들에게 선발수업을 시키는 대신, 당장 불펜에서 쓰는 건 일상이 됐다. 계약기간 중 성적을 내야 하는 지도자들에게 인내심을 기대하는 건 사치다. 각 팀마다 외국인 선발투수를 2명씩 쓰면서 새 얼굴을 발굴할 필요성도 줄었다.

여기에 2002년 월드컵축구 세대로 인해 약해진 ‘저변’도 한몫 한다. 대다수 스카우트들은 “2002년 월드컵 4강 이후 운동을 시작하는 초등학교 때 축구로 간 선수가 많다. 2010년대 들어 드래프트로 유입되는 신인들의 수준이 떨어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한다. 전승으로 금메달을 딴 2008베이징올림픽 이후 ‘야구 키즈’들이 들어오면 해결될 문제라고 하지만, 시간이 좀더 필요하다.

이명노 기자 nirv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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