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rts & Law Story] 각본이 없는 드라마를 보고 싶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6년 8월 30일 05시 45분


스포츠의 기본정신은 ‘정정당당’이다. 그래야 각본 없는 드라마가 연출될 수 있다. 2016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펜싱 남자 에페 결승에서 기적 같은 역전승을 거둔 한국 박상영이 금메달을 확정한 뒤 기뻐하고 있다.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스포츠의 기본정신은 ‘정정당당’이다. 그래야 각본 없는 드라마가 연출될 수 있다. 2016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펜싱 남자 에페 결승에서 기적 같은 역전승을 거둔 한국 박상영이 금메달을 확정한 뒤 기뻐하고 있다.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① 스포츠의 기본정신은 ‘정정당당’

스포츠(Sports)라는 말은 옛 프랑스어인 ‘desport’에서 유래했다. 스포츠는 우리말로 보통 ‘운동경기’로 번역되지만, desport는 원래 ‘여가’를 뜻하는 말이었다. 단어의 의미에서 알 수 있듯 오늘날의 스포츠에선 경쟁이나 승부의 요소가 중요시되고 있지만, 예전에는 ‘즐긴다’는 의미가 훨씬 더 강했다.

스포츠가 이처럼 여가나 즐김의 의미를 넘어 경쟁이나 승부의 영역으로 넘어오면서 스포츠 자체를 직업으로 삼는 종목이나 선수도 많아졌다. 나아가 관중들도 이제는 많은 돈을 내고 경기를 관람하게 됐다. 또 스포츠 자체나 선수들의 사회에 대한 영향력도 매우 커졌다. 아이들의 장래희망을 묻는 질문에 스포츠선수가 인기직업의 가장 높은 곳에 배치되기도 하고, 심지어는 부모들이 자신의 못 다한 꿈을 이루기 위해 아이들에게 운동을 시키기도 한다.

미국의 MLB, NBA, NHL, NFL, 영국의 EPL, 스페인의 프리메라리가, 독일의 분데스리가처럼 큰 규모는 아니지만, 우리나라에도 FA 계약을 통해 수십억 원을 받는 선수들이 각 종목에 생겨났다. 그런데 시장이 커지다 보니 최근 스포츠계에서도 법을 어기는 일들이 심심치 않게 일어났다. 그러면서 ‘스포츠의 기본정신을 망각했다’는 언론보도가 이어졌다. 그렇다면 ‘스포츠의 기본정신’이란 도대체 뭘까?

TV가 많지 않던 시절, 프로레슬링 경기가 중계되는 날이면 사람들은 TV가 있는 집에 모여 앉아 경기를 관전하곤 했다. 마흔 살 전후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할 ‘박치기의 제왕’ 김일 선수가 반칙을 일삼는 일본이나 미국 선수들을 상대로 박치기로 대미를 장식하는 장면을 보며 온 국민이 열광하곤 했다. 송곳 같은 날카로운 물건을 숨겨서 링에 올라 반칙을 저지르는 선수에 대항해 맨 이마 하나로 상대를 쓰러뜨리는 데서 모두가 큰 쾌감을 느꼈던 것이다. 거기에 천규덕 선수의 당수, 장영철 선수의 드롭킥, 여건부 선수의 알밤까지 우리에게 재미와 더불어 통쾌함을 안겨주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프로레슬링의 인기가 나락으로 떨어졌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게 됐다. 왜일까? 필자는 그 이유를 ‘각본 있는 드라마’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정정당당하게 겨루어 실력과 작전에 따라 승부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처음부터 각본에 따라 이루어진다니! 스포츠는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믿었는데, 각본이 있다니! 속칭 ‘짜고 치는 고스톱’이 되면서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것이다.

그렇다. 스포츠의 기본정신은 바로 ‘정정당당(正正堂堂)’이다. 정정당당은 비겁한 짓을 하지 않는 바르고 떳떳한 태도를 가리키는데, 선수뿐만 아니라 코치, 심판, 심지어는 관중들에게까지도 요구된다. 선수는 승부를 조작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자세, 감독이나 코치는 승부처에서 가장 좋은, 가장 확률 높은 작전을 펼치고 선수를 기용하는 자세, 심판은 외부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소신대로 양심과 규칙에 따라 판정을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또한 관중들에게도 인간 승리에 감동해주고, 멋진 승부에 박수쳐주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KBL 김영기 총재는 후배 감독들에게 비록 큰 점수차로 지고 있더라도 가급적 주전 선수들을 기용해달라고 당부한다. 관중들은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경기를 보러 오는 것이고, 후보가 아닌 주전 선수들을 보러 오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 시즌을 치르기 위한 전략이나 체력적 문제, 후보 선수들의 경험 쌓기를 통한 주전 도약 등의 측면에서 주전 선수의 기용만을 고집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관중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임에는 틀림없다.

얼마 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하계올림픽이 열렸다. 우리는 또 밤새워 선수들의 활약을 보면서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 때때로 TV에선 중계 아나운서의 이런 말이 들려왔다. ‘각본 없는 드라마입니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습니다.’

우리는 가상이 아닌, 각본이 없는 진정한 인간 승리의 드라마를 보고 싶다.

양중진 법무부 법질서선진화과장·부장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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