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비키니]선수는 ‘노오력’ 지나 ‘덕력’의 시대로 가는데…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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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에 이름 올리려다 최고 투수로… 만화 보고 체조선수 돼 올림픽 2연패
오타쿠의 힘이 선수들 춤추게 하는데… 야구감독 중엔 여전히 노오력만 강조
선수들은 “우리도 産災 되나요” 호소

“게임 속의 내 능력치가 너무 낮아서 사촌동생도 나를 쓰지 않는다고 하더라. 그래서 운동을 게을리할 수 없었다.”

왼손 투수 이가와 게이(37)는 2003년 일본 프로야구 센트럴리그 최우수선수(MVP)로 뽑힌 비결을 묻자 이렇게 답했습니다. 그해 최고 투수가 받는 사와무라상도 당연히 이가와가 차지했습니다. 2007∼2008년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에서도 뛰었던 이가와가 프로야구 선수를 꿈꾼 것부터 ‘실황 파워풀 프로야구’라는 게임에 이름을 올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건 오타쿠의 힘, ‘덕력’을 보여 주는 사례입니다. 덕력은 한국 누리꾼들이 일본어 오타쿠를 소리가 비슷한 오덕후라고 부르는 데서 유래한 신조어입니다. 덕력의 반대말은 ‘노오력’입니다. 기성세대가 “요즘 젊은이들은 노력이 부족하다”고 비판하자 “정말 최선을 다해 노력해도 안 되는데 그럼 ‘노오력’을 해야 하는 거냐”며 쓰기 시작한 말입니다.

저는 이 둘을 이렇게 구분합니다. 힘든 일을 꾹 참고 견디면서 남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는 게 노오력입니다. 노오력을 했는지 아닌지도 남이 평가합니다. 거꾸로 덕력은 힘든 일조차 즐기면서 과거의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꿈꾸게 만드는 힘이 덕력입니다. 당연히 평가 주체도 자기 자신입니다.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현장을 취재하면서 저는 노오력의 시대가 저물고 덕력의 시대가 찾아오고 있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습니다. 땀과 눈물이 성공의 밑거름인 건 언제든 변하지 않는 사실. 이제는 노오력이 아니라 덕력이 땀과 눈물의 원동력으로 바뀐 겁니다.

카카오톡 자기소개에 ‘올림픽=제일 재미있는 놀이’라고 쓴 남자 펜싱 국가대표 박상영(21·한국체대)은 결승에서 기적 같은 역전승을 이끌어 냈습니다. 일본 체조 대표 우치무라 고헤이(27)는 어릴 때 체조 만화 ‘간바! 플라이하이’를 보고 체조 선수가 됐고 올림픽 2연패를 이뤘습니다. 어릴 때 고향에서 친구들과 누가 막대기를 멀리 던지나 내기하며 놀던 줄리어스 예고(27·케냐)는 내기에서 이기고 싶어 유튜브 동영상을 찾아보며 연습했고 결국 리우에서 올림픽 은메달리스트가 됐습니다.

심지어 국가에서 철저하게 선수를 육성하던 중국도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중국 여자 수영 대표 푸위안후이(20)는 100m 배영에서 동메달을 딴 뒤 “팔이 짧아 은메달을 따지 못했다”고 말해 인터넷 스타로 떠올랐습니다. 그는 계주에서 4위를 차지한 뒤에는 “생리가 시작돼 좋은 성적을 내기 힘들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에 대해 “중국도 올림픽 금메달을 보는 시선이 바뀌고 있다. 개인이 행복한 게 최고”라고 평가했습니다.

반면 한국 프로야구에는 여전히 스승이라는 이름으로 ‘노오오오오오오오오력’만 강조하는 지도자가 있습니다. 리우에 다녀와서 보니 그 지도자는 취재진에게 자기 코칭 철학이 왜 옳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50분 넘게 설명했다고 하더군요. 그 사이 그 팀 선수들은 “프로야구 선수도 산재 처리 되나요?”라고 기자들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사실 아이러니하게도 야구에서 선수들이 즐겨야 하는 건 ‘명령’에 가깝습니다. 경기를 시작하기 전 구심이 외치는 말은 “워크 볼(Work Ball)”이 아니라 “플레이 볼(Play Ball)”이니까 말입니다. 언제가 돼야 그 팀 선수들도 마음껏 덕력을 자랑할 수 있게 될까요.
 
황규인 기자 페이스북 fb.com/bigkini
#덕력#노력#오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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