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 기자의 히트&런]영원한 국가대표, 이대호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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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환한 미소 내년 3월에도… 지난해 11월 열린 야구 국가대항전 프리미어12에서 우승한 한국 대표팀의 이대호(왼쪽)와 정근우가 우승 트로피를 들고 밝게 웃고 있다. 동아일보DB
이 환한 미소 내년 3월에도… 지난해 11월 열린 야구 국가대항전 프리미어12에서 우승한 한국 대표팀의 이대호(왼쪽)와 정근우가 우승 트로피를 들고 밝게 웃고 있다. 동아일보DB
올해 초 이대호(34)가 일본 프로야구 잔류 대신 메이저리그 도전을 선언했을 때 ‘역시 이대호답다’고 생각했다.

전 소속 팀 소프트뱅크는 이대호를 잡기 위해 3년간 18억 엔(약 194억 원)이라는 거액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대호는 구애를 뿌리치고 시애틀과 마이너리그 계약을 했다. 중요한 건 돈보다 꿈이었다. 30대 중반인 스프링캠프 ‘초청 선수’ 이대호는 어린 선수들과의 경쟁을 이겨냈고, 어엿한 메이저리거로 자리 잡았다.

4일 제4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사령탑으로 선임된 김인식 감독에게서 이대호 이름이 나왔을 때 또 한 번 ‘그답다’는 생각을 했다. 선수 구성의 어려움을 호소하던 김 감독은 “그래도 얼마 전 이대호가 전화해 ‘부상만 없다면 대표팀에 참가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말했다. 시애틀과 1년 계약을 한 그는 올 시즌 후 새 팀을 찾아야 할지 모른다. 갈 곳이 정해지지도 않았는데 대표팀을 먼저 언급하는 데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3년 전 대만 타이중에서 열린 제3회 WBC 1라운드 때도 그랬다. 많은 선수가 출전을 고사했다. 메이저리거들은 팀 적응과 소속 팀 반대를 들었고, 국내 선수들은 부상 등의 사유로 출전을 꺼렸다. KBO 규약에 따르면 WBC에서 뛰다 다치면 치료비를 받고, 부상으로 정규시즌에 현역 선수로 등록하지 못한 기간의 절반을 등록 기간으로 인정받는다. 하지만 그래도 부상은 선수뿐 아니라 팀에도 큰 손해를 준다.

2006년 1회 대회 때 김동주의 어깨 부상으로 소속 팀 두산은 시즌 내내 큰 손실을 입었다. 이 때문에 3회 대회 때는 최종 엔트리를 발표할 때까지 7차례나 변경됐다. 당시 일본 프로야구 오릭스 소속이던 이대호는 당당히 대표팀 합류 의사를 밝혔고, 태극기를 새겨 넣은 1루수용 미트를 특별 주문할 정도로 국가대표에 강한 애정을 보였다. 이대호는 지난해 11월 야구 국가대항전 ‘프리미어12’에서도 대표팀 주역으로 활약했다. 특히 일본과의 준결승에서 9회초 역전 2타점 적시타를 쳐내며 한국의 초대 우승에 기여했다.

2006년 도하 아시아경기에서 프로 입단 후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단 그는 지난해 프리미어12까지 8차례나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었다. 순수 국내파로만 팀을 구성한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를 제외하곤 모든 국제대회에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그는 예전에 사석에서 “태극마크는 내게 무한한 자부심이다. 국가대표로 출전한 대회 덕분에 병역 혜택도 받았다. 몸이 괜찮은 이상 무조건 참가해야 된다”고 말했다.

내년 WBC에는 이대호뿐만 아니라 그의 친구들인 1982년생 스타 선수가 대거 참가할 가능성이 높다. 2009년 제2회 WBC에 참가했던 텍사스 추신수는 현지에서 만난 한국 기자에게 “불러만 준다면 당연히 참가하고 싶다. 조만간 김인식 감독님께 전화를 드려 의사를 전할 예정”이라고 했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전성기 못지않은 활약을 보이고 있는 정근우와 김태균(이상 한화)도 대표팀 승선 가능성이 높다. 이 4명은 2000년 캐나다 에드먼턴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 대회 우승 주역들이다.

나이와 환경 등을 고려할 때 내년 WBC는 이들이 함께 뛰는 마지막 국제대회가 될 가능성이 높다. 2009년 제2회 WBC에서 준우승에 기여하는 등 그동안 팬들에게 많은 기쁨을 안겨줬던 1982년생 황금세대들이 다시 모여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하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이대호#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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