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몰라요” 명언 남기고 떠난 하일성의 안타까운 이별

  • 스포츠동아
  • 입력 2016년 9월 9일 05시 30분


8일 세상을 떠난 하일성 전 KBO사무총장은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명 해설가로 이름을 날린 뒤 2006년 프로야구행정가로 변신했다. 2008베이징올림픽 야구대표팀 단장으로 금메달 수상을 함께했고, 2009년 준우승을 차지한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때는 김인식 감독 선임을 주도했다. 2009년 대회 직전 고인(맨 앞 오른쪽)이 김인식 감독 앞에서 선수대표 손민한에게 출정서를 받으며 웃었다. 스포츠동아DB
8일 세상을 떠난 하일성 전 KBO사무총장은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명 해설가로 이름을 날린 뒤 2006년 프로야구행정가로 변신했다. 2008베이징올림픽 야구대표팀 단장으로 금메달 수상을 함께했고, 2009년 준우승을 차지한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때는 김인식 감독 선임을 주도했다. 2009년 대회 직전 고인(맨 앞 오른쪽)이 김인식 감독 앞에서 선수대표 손민한에게 출정서를 받으며 웃었다. 스포츠동아DB
“야구 몰라요.” TV 야구중계를 하는 해설가가 이렇게 말할 때마다 귀를 쫑긋 세워 해설을 듣던 야구팬들은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왜 모르는 게 없는 야구박사 같은 해설가가 경기가 뒤집히면 야구를 모른다고 할까….’

그러나 그 한마디는 역설적으로 야구를 알아갈수록 명언 중의 명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한국에서 “야구 몰라요”, “역으로 가네요”라는 그의 해설을 듣지 않고 야구를 봐온 팬이 과연 있을까. 최근에 야구를 접하게 된 팬이 아니라면 말이다. 30여 년간 마이크 앞에서 외쳤던 그의 명언은 모든 야구팬들에게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다.

하일성(1949~2016) 전 KBS 야구해설위원(전 KBO 사무총장)이 8일 세상을 떠났다. 하 위원은 이날 오전 서울 송파구 개인 사무실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돼 충격을 줬다. 경찰에 따르면 하 위원의 휴대전화에는 부인에게 보내려고 했던 ‘사랑한다’, ‘미안하다’ 등의 내용의 문자 메시지가 있었다. 이 문자는 부인에게 전달되지 않고 휴대전화에 흔적이 남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야구는 보면 볼수록 인생의 축소판 같다. “야구 몰라요” 유행어를 남긴 하 위원의 인생도 그라운드 위 경기처럼 한 치 앞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마지막은 애잔함만 가득하다. 야구계와 야구팬들에게 비판을 받았던 때도 있었지만, 분명 한국프로야구가 초창기에 국민스포츠로 자리 잡는 데 있어서 그가 큰 역할을 해낸 사실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고인은 1949년 유복한 군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린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방황했지만 야구를 접하면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됐다. 고인은 생전 “야구 안 했으면 깡패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명 선수는 아니었지만 특기생으로 경희대학교에 입학해 2학년 때까지 야구를 한 그는 이후 야구를 그만뒀고 군 입대 후 월남전에 참전하기도 했다. 체육교사(환일고)로 재직 중이었던 그는 동료 교사이자 배구 해설가였던 오관영씨의 추천으로 고교야구 해설가로 데뷔했다. 체육교사와 해설을 겸직하다 프로야구 출범 이후 KBS 전속 해설위원으로 자리 잡으면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고인은 재치 있는 입담이 장기였다. 특히 사석에서는 코미디언 이상 큰 웃음을 안기는 성격과 말솜씨로 늘 좌중을 휘어잡았다. 해설가로도 감을 중시하는 예측해설에다 코믹한 감성을 더해 친근함을 강조하며 일반 야구팬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해설가로 30년간 라이벌 구도를 이었던 허구연 MBC 해설위원이 국가대표 출신에 해박한 이론과 미국야구, 일본야구까지 섭렵한 정통 야구해설가 스타일이었다면, 하 위원은 서민들에게 야구를 알기 쉽고 재미있게 풀어주는 이웃집 아저씨 같은 친숙함이 강점이었다.

2006년 KBO 사무총장으로 취임하며 프로야구 행정가로 변신한 고인은 2007년을 끝으로 현대 유니콘스가 해체될 당시 이장석 현 히어로즈 대표의 인수 과정을 주도하기도 했다. 당시 비판여론도 컸지만 7개 구단 체제로 돌아가지 않고, 8개 구단 체제를 유지하게 만들었다는 공도 남았다. 무엇보다 2008베이징올림픽 야구대표팀 단장을 맡아 금메달 수확을 지원한 점은 한국야구사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2009년 KBO 사무총장에서 퇴임한 고인은 2010년 KBSN 해설위원으로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그러나 과거와는 야구중계 환경부터 많이 바뀌어 있었다. 모든 경기가 스포츠전문채널과 인터넷으로 중계되고, 팬들도 각종 기록 등을 접하는 시대에 접어들면서 과거의 예측해설은 빛을 잃기 시작했다. 또한 KBO 사무총장을 지내다 해설가로 복귀하면서 해설에서 현장감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허구연 위원은 여전히 시청률 1위를 이끄는 스타 해설가였지만 그는 과거 명성만큼 큰 활약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여기에 사업실패 등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거액의 채무를 갚는 과정에서 사기를 당하기도 했고 지인에게 아들을 프로야구단에 입단하게 해달라는 청탁을 받아 사기혐의로 피소되는 등 힘겨운 시간이 이어졌다. 최근에는 아주 가까운 인사들을 제외하면 야구계와 접촉을 피하고 지냈다.

공과 과가 있겠지만 친숙한 해설로 초창기 프로야구가 큰 인기를 끄는 데 큰 역할을 한 고인의 갑작스러운 비보에 많은 야구인들은 비통함에 빠졌다. KBO는 8일 경기에 앞서 5개 구장에서 묵념하며 고인을 추모했다.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프로야구선수들은 고인의 야구발전에 대한 공로를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고인을 애도하기도 했다.

빈소는 서울 강동구 중앙보훈병원 장례식장 5호실, 발인은 10일 오전 10시, 장지는 서울 추모공원-국립 서울현충원 내 서울충혼당. 02-2225-1444

하일성(1949∼2016)

▲아마추어 선수경력=성동고∼경희대(내야수 우투·우타)
▲교직경력=양곡종고 체육교사(1974∼1977), 환일고 체육교사(1978∼1983)
▲야구해설경력=동양방송(1978∼1981), KBS 전속(1981∼2006), KBSN(2010∼2012)
▲주요경력=한국야구위원회(KB0)사무총장(2006∼2009), 2008베이징올림픽 야구대표팀 단장(2008), 월간 베이스볼코리아 발행인(1996∼1998), 골든스포츠 공동대표(2000∼2001),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사회체육과 겸임교수(2000년), 하일성 야구정보연구소 소장(1994∼)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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