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브라질월드컵을 앞두고 당시 축구국가대표팀 사령탑이었던 홍명보 전 감독은 최종 엔트리 확정 과정에서 논란을 낳았다. 2012런던올림픽에 출전한 대표팀을 지휘했던 그는 최종 엔트리 23명 중 13명을 런던올림픽대표 출신으로 채웠다. 특히 ‘소속팀에서의 활약’이라는 스스로 정한 원칙까지 깨며 박주영(당시 아스널)과 윤석영(당시 QPR)을 포함시켰다. ‘엔트으리’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밀어붙였던 홍 전 감독의 자기 식구 챙기기는 결국 브라질월드컵 조별리그(1무2패) 탈락이라는 참패로 이어졌다. 엔트리 논란은 그가 불명예스럽게 대표팀 사령탑에서 물러나는 단초가 됐다.
#울리 슈틸리케(독일)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이 2018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A조)에 돌입했다. 1일 중국전(3-2 승)과 6일 시리아전(0-0 무)에서 1승1무를 기록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번 최종예선을 앞두고 결은 다르지만, 홍 전 감독처럼 엔트리 문제로 구설에 올랐다. 지난달 22일 중국전과 시리아전에 나설 선수 명단을 발표하면서 23명이 아닌 21명만을 선발한 것이 발단이었다. “경기 엔트리는 11명이고, 교체출장은 3명밖에 되지 않는다”며 “뛰지 않을 선수를 소집하는 것은 본인에게도, 소속팀에도 좋지 않다”는 주장을 폈다. 일종의 ‘배려 엔트리’다.
그러나 소속팀과의 협의과정에서 손흥민(토트넘)은 중국전만, 석현준(트라브존스포르)은 시리아전만 뛰기로 사전 약속된 상태였기에 의아했다. 게다가 슈틸리케 감독은 이후 시리아전 장소가 레바논에서 마카오로 바뀌자 과감히 석현준의 발탁도 취소했다. 대체선수도 따로 뽑지 않았다. 결국 중국전은 20명으로 치렀고, 중국전이 진땀 승리로 끝나자 슈틸리케 감독은 경기 직후 기자회견에서 황의조(성남FC)의 추가 발탁을 전격 발표했다. 19명으로 치를 예정이던 시리아전 엔트리가 황의조의 가세로 그나마 20명을 채웠다.
슈틸리케, 실수 되풀이하지 않았으면…
#문제는 경기력이다. 가까스로 승리한 중국전에선 그래도 승점 3점을 챙겼으니 괜찮다고 치더라도, A조 최하위로 지목된 시리아와 졸전 끝에 0-0으로 비긴 사실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다. 벤치 멤버가 풍부하지 않은 탓인지 시리아전 후반 투입된 3명의 교체 멤버는 기대했던 분위기 반전을 끌어내지 못했다.
엔트리 23명은 각국 대표팀에 주어진 ‘권리’다. 선수를, 소속팀을 생각해 뛰지 않을 선수를 뽑지 않는다는 것은 괜한 배려에 불과하다. 더욱이 선수는 꼭 그라운드에서만 경험을 쌓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벤치에 앉아서도, 대표팀에 몸담는 것만으로도 성장에 필요한 자양분을 얻을 수 있다. 한편으로는 슈틸리케 감독이 최종예선을 2차 예선처럼 만만히 본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앞뒤도 맞지 않는다. “뛰지않을 선수는 부르지 않는 게 낫다”더니 시리아전 90분 내내 벤치를 지킨 황의조를 왜 중국전 이후 황급히 호출했는지 궁금하다.
#홍 전 감독에 대한 신뢰는 엔트리 구성과정에서 깨졌고, 결국 참담한 결과로 이어졌다. 납득할 수 없는 엔트리 구성과 시리아전 결과로 인해 슈틸리케 감독에 대한 믿음에도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해외파에 대한 집착, 단순한 전술, 경기 흐름을 뒤집을 수 있는 벤치의 역량 부재 등 여러 측면에서 아쉬움을 자초했다. 슈틸리케 감독이 홍 전 감독의 전철을 밟는다는 것은 한국축구에는 재앙이다. 다행히 최종예선은 이제 2경기를 치렀을 뿐이다.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