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야구 10년전부터 왼손타자 유행… 지도자들 미래보다 당장의 성적 집착
왼손타자 천적인 왼손투수만 키워… 우완투수는 직구보다 변화구 가르쳐
결국 선동열같은 우완정통파 씨 말라
‘국민감독’ 김인식 감독이 또 ‘오른손 투수’ 타령이다. 지난해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국제 야구 대항전) 때도 그러더니, 내년 제4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 사령탑 취임 때도 “쓸 만한 우완 투수가 없다”고 장탄식이다. 해외 도박 문제로 ‘뜨거운 감자’가 된 오승환(세인트루이스)을 “절실히 필요한 선수”라면서 총대를 메고 나서기까지 했다. 그만큼 호출할 오른손 투수가 없다는 뜻이다.
김광현(SK), 양현종(KIA), 장원준(두산)…. 사실 국제대회에 내세울 만한 투수를 꼽아 보면 모두 왼손잡이다. 야구는 투수 놀음이다. 승부의 기본인 투타 대결 때 ‘왼손잡이와 오른손잡이’를 어떻게 맞붙이느냐가 승패를 좌우한다. WBC 같은 단기전 승부에선 더욱 그렇다. 오른손잡이 투수가 없으면 한쪽 날개가 꺾인 것과 같다.
우완 투수 기근? 아무리 봐도 이상한 문제다. 한국의 인구 중 오른손잡이는 95%이고, 왼손잡이는 5%에 불과하다. 야구에선 75 대 25 정도라고 하지만, 그래도 오른손 자원이 없다는 건 확률상 쉽지 않다. 오른손잡이가 태생적으로 열등한 것일까? 과거엔 선동열, 최동원 등 오른손 정통파 투수들이 리그를 대표했다. 그렇다면 그 많은 우완 투수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달라진 고교야구 풍경이 유력한 가설을 제시한다. 바로 ‘생태계 불균형’이다. 한 팀 9명의 타자 중 1, 2명이던 왼손 타자가 최근엔 6, 7명이나 된다. kt 조찬관 스카우트 팀장은 “대부분 왼손잡이가 아니라 오른손에서 전향한 타자들”이라고 설명했다. 오른손잡이가 훈련을 통해 왼손 타자가 된 것이다. 공 던지는 건 그대로 오른손이어서 ‘우투좌타’가 된 것이다.
김현수(볼티모어)가 선구자 격이니, 10년 정도 됐다. 고교 야구에서 알루미늄 배트를 버리고 나무 배트를 쓴 시기와 일치한다. 반발력이 낮은 나무 배트 시대가 되면서 고교 야구는 거포보다 단타를 노리는 콘택트형 타자에게서 해법을 찾았다. 공을 친 뒤 왼손 타자는 오른손 타자보다 1루에 0.1초 정도 빨리 도달한다. 아무래도 안타 확률이 높다. 게다가 천적인 왼손 투수도 적었다. 너도나도 왼손으로 바꾸면서 생태계가 달라졌다.
천적인 왼손 투수의 몸값도 올라갔다. 어느 팀이든 이기기 위해선 왼손 투수 육성에 공을 들일 수밖에 없었다. 반면 왼손 타자에게 상대적으로 약한 오른손 투수들은 위축됐다. 당장의 승리에 집착한 지도자들은 오른손 투수들에게 직구보다는 포크볼 등 변화구를 더 많이 던지게 했다. 오른손 정통파 투수는 강속구 투수로 성장할 기회를 박탈당했다. 사이드암이나 잠수함 투수로 아예 폼을 바꾸는 경우도 늘었다.
결국 오른손 투수들은 적당한 스피드의 직구에, 몇 가지 변화구를 갖춘 ‘그저 그런’ 투수들로 하향 평준화됐다. 쓸 만한 오른손 투수는 그렇게 사라졌다.
일본 야구도 우리 이상으로 기교를 중시하는 것 같지만, 아마추어 투수에게는 회전이 좋은 직구를 우선 강조한다. 다루빗슈 유(텍사스), 다나카 마사히로(뉴욕 양키스), 오타니 쇼헤이(니혼햄) 등 굵직한 오른손 투수들을 계속 배출하는 이유다. 생태계의 균형 회복 없이는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 어렵다. 국내 리그 흥행은 국제대회 성적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내년 WBC도 걱정이지만 그 이후 2018년 아시아경기, 2019년 프리미어12, 2020년 도쿄 올림픽, 2021년 5회 WBC로 국제대회는 쉬지 않고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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