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즌 스피드배구로 화제가 된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은 올해도 팀이 추구하는 색깔 있는 배구를 밀고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오사카(일본)|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프로배구 현대캐피탈 최태웅(40) 감독은 일본 전훈의 유일한 휴일이었던 10일, 오사카 숙소에서 외출하려는데 옷이 몽땅 사라졌음을 알았다. 되짚어보니 9일 나고야에서 출발할 때, 그곳 숙소에 옷을 그대로 두고 버스에 탄 것이다. 9일 나고야를 출발하기 직전 가졌던 일본 제이텍트와 평가전이 여러모로 마음에 안 든 데서 일이 시작됐다. 해법에 골몰하다보니 짐 정리는 안중에 없었던 것이다. 10일 밤 오사카에서 추리닝 차림의 최 감독과 1시간이나 마주 앉을 수 있었던 것은 대화의 테마가 배구였기 때문일 것이다. 검증된 최 감독의 배구 내공이나 리더십을 굳이 또 묻고 싶진 않았다. 감독 최태웅이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를 알고 싶었던 자리였다. 결과 자체가 아니라 ‘왜 그 결과에 이르렀는지에 관한 객관적 프로세스’를 끊임없이 탐구하려는 지점에서 최 감독의 ‘특별함’이 있었다.
-지난해 ‘스피드배구’가 잘됐다. 올해는 그 이상을 보여줘야 한다는 중압감이 만만찮을 듯싶다.
“성적에 대한 부담은 사실 많지 않다. 물론 작년만큼 했으면 좋겠지만…. 우승이라는 목표를 팀 전체가 공유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내가 거기에 목매지 않겠다. 거기(승리)에만 초점을 맞추면 나부터 스트레스 받고, 팀 운영이 그쪽으로 치우친다. 그보다는 현대캐피탈이 추구하는 색깔 있는 배구, 행복한 배구를 선수들과 하고 싶다.”
-지도자에게 승리보다 중요한 것이 있을까?
“‘만약 성적이 안 좋았으면 긍정적 마인드가 이 팀에 생겼을까’란 생각은 한다. 그러나 ‘진정성을 가지고 절실하게, 간절히 바라면 (승부를 초월한 목적지에) 도달한다’고 믿는다. 현대캐피탈의 스피드배구가 매뉴얼이 나와 있는 것이 아니다. 정답이 없으니까 처음에 막막했다. 지난해 전반기를 3연패로 끝냈을 때 내가 조금 흔들렸다. 그때 코치들이 잡아줬다. ‘이럴 거면 왜 시작했느냐’고. 후반기부터는 선수들이 스피드배구를 이해하며 성적까지 나오더라.”
-결국 리더십은 선수들의 컨센서스를 끌어내는 기술일 것이다. 그 방법론에서 최 감독은 뭔가가 있는 것 같다.
“결국 설득이다. 배구 쪽 얘기를 전할 때는 숫자로 많이 얘기한다. 인성 쪽은 내 경험만으로 한계가 있으니 자극을 줄 수 있는 영상들을 수집한다. 그런 작업을 통해 대화가 진지해지고 올바른 방향으로 가더라.”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 스포츠동아DB -선수들이 바로 바뀌는 것이 보이니까 ‘최태웅 어록’이 더 회자되는 것 같다.
“진짜 아니라고 생각될 때는 말을 참는다. 그것만 빼곤 솔직하게 얘기하려고 한다. 그 진정성을 선수들이 알아주는 것 같다.”
-최 감독이 지향하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있을 텐데?
“작년에는 선수들이 너무 잘해줬다. 올해는 그만큼 못할 수도 있다. 그래도 밀고 나갈 거다.”
-막상 잘 안 되면 선수들이 미워질 수도 있을 것이다.
“지도자는 참는 것이 아니라 이해해야 한다. 외국인선수만 해도 그렇다. 선수들에게 얘기했다. ‘너희들이 평가할 때, 작년의 오레올에 비해 올해 톤 밴 랭크벨트(이하 톤)한테 실망할 수도 있을 거다. 오레올처럼 기대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똑같이 대해줘라. 잘한다고 잘해주고 못한다고 못해주는 것은 현대캐피탈의 팀 문화가 아니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