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선수들이 저와 비교되며 비판받는다는 뉴스를 보고 안타까웠습니다. 같이 힘내자고 말하고 싶네요.”
지난달 21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남자 마라톤에서 우승자 못지않게 화제를 모은 선수가 있었다. 일본 개그맨 출신으로 캄보디아로 국적을 바꿔 출전해 140명 중 139위로 결승선을 통과한 다키자키 구니아키(瀧崎邦明)가 주인공이다. 당시 한국 대표 손명준은 131위, 심종섭은 138위로 완주했다. 국내에선 ‘국가대표가 39세 개그맨과 꼴찌 경쟁을 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7일 동아일보 도쿄(東京)지사에서 만난 다키자키는 “우연히 내가 바로 뒤에 있었던 것뿐이다. 앞으로 꾸준히 연습하면 분명 더 좋은 결과를 낼 것”이라며 한국 선수를 격려했다.
신장이 147cm로 단신인 다키자키는 일본에서 ‘네코(고양이) 히로시’라는 예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학창 시절 달리기를 즐겼던 그는 2008년 방송 프로그램의 도전 과제였던 ‘도쿄 마라톤 완주’를 달성하며 마라톤에 입문했다. 당시 기록은 3시간 48분. 그는 “화장실에 네 번 다녀오지 않았다면 세계 기록이 나왔을 것”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의 올림픽 출전은 2009년 한 예능 프로그램 출연이 계기가 됐다. 출연자들은 인기가 높지 않았던 그를 스타로 만드는 방법을 두고 “도쿄대에 보내자” “선거에 내보내자” 등 장난스러운 아이디어들을 던졌다. 그러던 중 한 명이 “국적을 바꿔 올림픽에 출전시키자”는 의견을 냈다. 진지하게 받아들인 다키자키는 자신이 대표가 될 수 있는 곳을 찾다 2011년 캄보디아로 귀화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출전을 노렸지만 ‘국적을 얻은 지 최소 1년이 지나야 올림픽에 나갈 수 있다’는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규정에 걸려 무산됐다. 그는 4년 뒤를 준비했다. 매년 3, 4개월씩 캄보디아에 가 피나는 연습을 했다. 캄보디아어도 배웠다.
다키자키는 “일본에서 개그맨 활동을 할 때는 매일 30km를 뛰었다. 마라톤 옷을 갖고 다니며 촬영장, 집, 사무실 사이를 뛰어다녔다”고 말했다. 그 덕분에 4년 동안 줄곧 캄보디아 국내 예선에서 1위를 기록했다. 2014년에는 인천 아시아경기를 최하위로 완주했다. 30대 후반의 나이임에도 기록이 점점 좋아져 올해 2월 도쿄 마라톤에서는 본인의 최고 기록(2시간 27분)을 달성했다.
리우 올림픽 마라톤에는 155명이 출전해 140명이 완주했다. 그는 “골인 지점을 2km 앞두고 뒤에 있던 요르단 선수가 어깨를 치면서 ‘조금만 더 힘내자’고 말하고 앞질러 나갔다”며 “다른 캄보디아 선수들이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힘을 내 다시 앞질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완주 후 요르단 선수와 서로 얼싸안고 기쁨을 나눴다.
그가 경기를 마치고 새 조국 ‘캄보디아’를 연호하는 모습이 전파를 타고 세계로 퍼졌다. 다키자키는 “세계에 캄보디아를 알려줘 고맙다는 인사를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또 “리우의 관중을 포함해 일본, 캄보디아로부터 모두 응원을 받았다. 국적을 떠나 순수하게 노력하는 것을 응원하는 게 올림픽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향후 계획에 대해서는 “한계까지 노력해 계속 좋은 기록을 내고 싶다. 가능하면 2020년 도쿄 올림픽에도 출전하고 싶다”고 의욕을 불태웠다. 그는 또 “캄보디아에 은혜를 갚기 위해 현지 선수의 마라톤 연습 등을 지원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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