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에서 5이닝이 지닌 의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선발투수가 승리하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다. 5이닝을 채우고 선발승을 따내는 투수들은 무수히 많다. 그러나 그 누군가에게 5이닝은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하루하루 버텨내기 위한 생명수와도 같다. 넥센 우완투수 황덕균(33)은 그 흔한 5이닝 덕분에 한 경기가 아닌 1년을 더 버티게 된 케이스다.
● 전도유망한 우완투수에서 3차례 방출선수로
황덕균은 선린인터넷고를 졸업하고 2002년 신인드래프트 2차 4라운드(전체 33번)에 두산의 지명을 받은 유망주였다. 그러나 1군에서 단 1경기도 던지지 못하고 2004년 방출의 아픔을 겪었다. 프로무대로 돌아오기까지 무려 8년이 걸렸다. 2012년 당시 신생팀이던 NC의 공개 트라이아웃에 참가해 합격통보를 받았다. 그러나 1군에서 그에게 주어진 기회는 단 1경기가 전부였다. 2013년 9월8일 문학 SK전에 구원등판했으나, 아웃카운트를 하나도 잡지 못하고 내려왔다. 결국 2013시즌이 끝나고 NC에서도 방출되는 아픔을 겪었다. 2014년 신생팀이던 kt의 공개 트라이아웃을 통해 또 한 번의 기회를 잡았지만, 지난해 1군 3경기에서 3.2이닝을 소화한 것 외에 별다른 기록을 남기지 못했다. 2015시즌이 끝나고 또 다시 방출통보를 받았다. 지난해까지 황덕균이 1군에서 남긴 기록은 4경기 방어율 12.27(3.2이닝 5자책점).
● 절망의 끝에서 잡은 기회
절망의 끝에서 또 한 번 기회를 잡았다. 올 시즌을 앞두고 테스트를 통해 넥센에 입단했다. 넥센은 지난 시즌이 끝나고 손승락(롯데)과 한현희, 조상우(이상 팔꿈치 수술)의 이탈로 투수력이 약해졌다는 평가를 받던 터였다. 그러나 1군에 황덕균의 자리는 없었다. 6월3일 광주 KIA전에서 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지만, 곧바로 2군행을 통보받았다. 9월15일 다시 1군의 부름을 받기까지 3개월이 걸렸다. “마음이 아팠지만, 언젠가는 기회가 올 것이라는 생각으로 절치부심하며 준비했다.” 황덕균의 회상이다.
반전이 일어난 날은 9월15일, 추석 당일이다. 고척 kt전에서 황덕균에게 등판 기회가 찾아왔다. 선발 박주현이 1회초 아웃카운트를 하나도 잡지 못하고 무너지자 부랴부랴 마운드에 올랐다. 0-6으로 끌려가던 상황. 큰 동기부여를 기대하긴 어려웠다. 그러나 황덕균에게는 이 기회마저 소중했다. 1구 1구에 혼을 실어 던졌다. 1구가 1아웃이 되고, 1아웃이 1이닝이 됐다. 그렇게 57구로 5이닝을 실점 없이 버텼다. 넥센 타선은 뒤늦게 10점을 폭발하며 10-6의 역전승을 일궈냈다. 넥센 염경엽 감독은 “황덕균이 인생투를 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 황덕균에게 5이닝은 생명수였다
감격에 찬 황덕균의 목소리는 떨렸다. “오늘 소화한 5이닝으로 (선수생활을) 1년 더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쁘다”며 “마침 가족이 야구장에 왔는데, 잘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 더 기쁘다”고 했다. 1군 등록조차 가물가물했던 투수가 아들(4)과 딸(2), 그리고 아내가 지켜보는 앞에서 팀을 승리로 이끌었으니 그 감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늘 2군에 머물다 방출 위기를 맞이하는 게 일상이던 황덕균에게 선수생명 연장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이다. “황덕균은 1년 더 기회를 받게 될 것이다”던 염 감독의 말은 엄청난 동기부여다. “팀에서도 기대하고 있고, 꼭 기회를 잡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염 감독의 진심이다. 황덕균도 “분위기 좋은 우리 팀에서 선후배들과 오랫동안 야구하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