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15년 전인 2001년 6월15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황덕균(33·넥센)에겐 잊지 못할 날이다.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KBO리그 2002 신인2차지명회의에서 4라운드(전체 33번)에 두산의 지명을 받았다. KBO리그에서 꾸준히 뛰고 있는 SK 박희수(6라운드), 삼성 장원삼(당시 현대·11라운드)보다 높은 순위였다. 당시 두산이 2차 4라운드까지 지명한 선수 중 투수는 지난해까지 SK에서 뛴 이재영(1차지명)과 황덕균이 전부였다. 그만큼 기대가 컸다.
그러나 황덕균에게 1군 마운드에 오를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2군을 전전하다 2004년 방출됐다. 프로로 돌아오기까지 무려 8년이 걸렸다. 2012년 당시 신생팀이던 NC의 공개 트라이아웃에 참가해 합격통보를 받았다. 그러나 2013시즌 1군 단 1경기에만 등판했고, 그 시즌 직후 NC에서 방출됐다. 2014년 신생팀이던 kt의 공개 트라이아웃을 통해 또 한 번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지난해 1군 3경기에서 3.2이닝을 소화한 것 외에 별다른 기록을 남기지 못했다. 2015시즌이 끝나고 또 다시 방출통보를 받았다. 신생팀 창단에 맞춰 선수생명을 이어갔지만, kt에서 방출된 뒤에는 그 기회마저 없었다.
● 은퇴 위기에서 발견한 한 줄기 희망, 그리고 승리
선수생명이 끝날 위기였다. 절박한 심정으로 넥센의 입단테스트를 받았다. 이장석 히어로즈 대표이사가 손을 내밀었다. “이장석 대표님이 아니었다면 은퇴하고 제2의 삶을 살았을 것이다. 나를 선수로 받아주신 덕분에 그렇게 바라던 1승을 챙겼다.” 황덕균의 회상이다. 19일 사직 롯데전에서 4이닝 1볼넷 무실점의 노히트 피칭으로 데뷔 첫 승을 따낸 뒤였다. 15일 고척 kt전에서 5이닝 무실점의 호투로 팀의 10-6 역전승을 이끈 뒤 떨리는 목소리로 “(선수생활을) 1년 더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쁘다”고 했던 황덕균이다. 염경엽 감독도 “황덕균에게 1년 더 기회를 줄 것이다. 팀에서 기대하는 부분이 있고, 본인도 기회를 잘 잡길 바란다”고 했다. 그리고 나흘 만에 야구인생의 목표였던 ‘KBO리그 1군 승리’까지 해냈다.
긴 2군 생활에도 좌절하지 않았다. 꿈이 점점 커졌다. 1군 무대를 밟았고, 1구가 1아웃, 1아웃이 1이닝, 1이닝은 1경기로 발전했다. 그리고 승리까지 따냈다. 2-0으로 앞선 2회 선발 김정인이 흔들리자 곧바로 마운드에 올랐고, 48구로 4이닝을 버텼다. 타선은 무려 9점을 더 뽑아내며 황덕균의 승리를 현실화했다. 염 감독은 “팀 전체가 (황)덕균이의 첫 승을 위해 뭉쳤다”고 했고, 손혁 투수코치는 “몇 년 만의 승리인지 날짜를 계산해보고 있다. 정말 축하한다”며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처음 프로 구단의 지명을 받은 날부터 계산하면 무려 5577일만이다.
● 황덕균의 진심 “넥센이라 행복합니다”
황덕균은 염 감독과 손혁 코치를 비롯해 브랜든 나이트, 최상덕 2군 투수코치 등의 이름을 언급하며 첫 승 기념구를 꺼냈다. 염 감독이 정성스레 적은 메시지가 눈에 띄었다. ‘늦었다 싶을 때가 시작이다.’ 황덕균은 공을 어루만지며 “감독님께서 메시지를 적어주셨다. 이 공에는 내 야구인생이 담겨있다. 큰 선물이다”며 기뻐했다. 그러면서 “동료들이 정말 많이 응원해줬다. 나는 삼진을 잡는 유형의 투수가 아니다. 내가 마운드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야수들이 지루하지 않게 상대 타자와 빠르게 승부하는 것이다. 야수들이 수비를 잘해준 덕분이다”고 공을 돌렸다.
넥센은 갈 곳 잃은 황덕균을 안아줬고, 황덕균은 최고의 투구로 팀에 승리를 선물했다. 데뷔 첫 승이 완성된 순간. 황덕균은 혼자 그라운드로 나갔다. 이택근과 채태인의 지시도 있었지만, “먼저 나가서 내 첫 승을 완성해준 선수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다”는 것이 황덕균의 진심이었다. 그는 “넥센의 팀워크는 훌륭하다. 서로 배려하는 문화도 정말 좋다”며 “내가 야구인생의 목표였던 1승을 한 것도 동료들 덕분이다. 넥센에 있어서 행복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 “항상 나를 먼저 생각해준 아내와 동생 등 가족에게도 정말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