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라이온즈는 KBO리그 출범 첫해인 1982년부터 단 한 시즌도 70패 이상을 당한 적이 없는 팀이었다. 2009년 69패(64승)가 이 팀의 역사상 최다패였다. 순위로 따져도 1996년의 6위(승률 0.448)가 가장 나빴다. 이런 삼성에 2016년은 ‘수모의 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20일까지 삼성은 132경기를 치러 72패(59승1무)를 당하고 있다. 자칫하다 80패를 걱정해야 될 처지다. 순위는 9위(승률 0.450)다. 가을야구 마지노선인 5위 KIA와 5.5경기 벌어져 있다. 1위 두산과 게임차는 28경기다. 2010년 이후 6시즌 연속 나갔던 한국시리즈는 언감생심이다. 일등주의의 아이콘처럼 각인됐던 삼성 제국은 왜 이렇게 단기간에, 처량하게 허물어졌을까.
● ‘관리의 삼성’이 관리에서 무너지다
세상의 평가는 관성의 법칙에 따라 내려질 때가 흔하다. 도박 의혹에 연루된 윤성환, 안지만, 임창용이 이탈했음에도 2016시즌 예상에서 삼성을 5강 후보에 넣는데 인색하지 않았다. 5년 연속 정규시즌 1위를 해낸 것을 목격한 사람들은 삼성의 몰락을 상상하기 쉽지 않았던 것이다. 표면적으로 삼성 야구의 붕괴는 외국인선수의 거듭된 영입 실패, 얇은 선수층과 불펜 불안 등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벨레스터(3패 방어율 8.03), 웹스터(4승4패 방어율 5.70)는 이미 퇴출됐고, 대체 외국인투수 레온(1패 방어율 11.25)은 드러누웠다. 외국인타자 발디리스(타율 0.266 11홈런)도 부상 탓에 용도폐기됐다. 2승5패 방어율 7.32인 플란데가 던져주는 것만으로 고마울 지경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이고 치명적 급소는 삼성 프런트의 선수단 관리 실패였다는 것이 야구계 중론이다. 제일기획으로 스포츠단 운영 주체가 이관되는 시점과 맞물리며 삼성은 메리트(승리수당) 폐지에 앞장서는 쪽으로 돌변했다. 삼성 안현호 단장은 “메리트 때문이 아니다”라고 부인했지만 이 과정에서 선수들의 팬 서비스는 예년에 비해 소홀해졌다. 이에 대해 프런트는 “성적이 나빠서”라고 해명했지만 프런트가 팀의 방향성을 못 잡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21세기 최강팀으로 군림한 사이 이 팀은 근거 없는 낙관주의에 감염됐고, 사태가 원하는 방향으로 흐르지 못하자 순간을 모면하기에 급급했다.
● 삼성야구단은 삼성그룹의 실용주의에서 무엇을 느꼈을까?
삼성의 공격 데이터를 보면 2016시즌 추락은 설명이 잘 되지 않는다. 투수 쪽 운영에 발목이 잡혔음을 유추할 수 있다. 문제는 삼성이 갈수록 좋아질 것 같지도 않다는 것이다. 프리에이전트(FA) 최형우와 차우찬이 이 팀에 남을 확률이 희박하다는 얘기가 야구계에 정설처럼 퍼져있다. 그렇다고 이를 메워줄 자금 투입도 회의적이다.
결국 삼성 야구단도 새 패러다임을 설정하고 다시 판을 짜야 될 시기다. 삼성이 갖는 상징성을 고려할 때, 프로스포츠 전반에 그 방향성이 영향을 끼칠 것이다. ‘물량공세 일등주의’가 아니라 ‘최적효율 실용주의’로 삼성그룹의 지향성이 바뀌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 체제에서 휴대폰 갤럭시노트7에 결함이 발생하자 리콜을 결단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이런 결단력을 갖고 미래를 디자인할 브레인이 삼성 야구단에도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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